
집값 잡기는 역대 모든 정부의 주요 과제였다.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정권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른다는 속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통계적으로도 노무현∙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세금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으로 중도층의 반감을 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노무현 정부(2003~2008년)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와의 전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규제 3법’으로 불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종합부동산세, 분양가 상한제를 근간으로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 나섰고 투기지역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로 규제하는 등 고강도 대출 규제책을 폈다.
부동산 규제 기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완화됐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2008~2013년) 시절에는 시장이 위축돼 아파트 가격이 하향 안정화됐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해 미분양 주택을 줄이고자 LTV를 종전 60%에서 70%로 상향 조정하는 등 규제 완화책을 폈다. 여기에 취등록세, 종부세, 양도세, 상속∙증여세 등 세금을 대폭 낮추고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등도 대폭 완화했다.
박근혜 정부(2013~2017년) 시절에는 초이노믹스를 통해 부동산 완화정책을 이어갔다. 초이노믹스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경제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부양해 내수 활성화를 꾀한다는 복안이었다. 소위 ‘빚내서 집 사라’ 식의 규제 완화책에 초점을 맞추며 LTV와 DTI를 전 금융권에 70%로 적용하는 쪽으로 대출 규제를 풀었다.
문재인 정부(2017~2022년)는 노무현 정부를 연상시키는 규제 강화책을 펼쳤다. 집권 초반인 2017년 8·2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도 과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서울 중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및 용산·성동·노원·마포·양천·영등포·강서 등 11개구와 세종시는 투기지역으로도 묶는 고강도 대출 규제책을 내놨다.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LTV와 DTI가 40%로 내려갔고, 투기지역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건수가 세대당 1건으로 제한됐다. 집값을 올리는 투기 수요로 지목된 다주택자를 대상으로는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세대원의 경우 지역에 상관없이 LTV와 DTI 비율을 10%포인트씩 내리는 추가 규제를 적용했다.
2019년 12·16 대책에서는 규제지역 내 시가 15억원을 넘는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원천 금지하며 고가 주택 매입을 위한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규제지역 내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대상으로는 9억원 초과 부분에 대해 LTV를 20%만 적용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대출자 개인별 40%(비은행권은 60%)로 제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2022∼2025년) 역시 DSR 규제는 유지하긴 했으나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을 대폭 해제하고 무주택자의 생애최초 주택 구입시 LTV를 80%로 올리는 등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했다.
정권별로 규제를 옥죄었다 푸는 흐름이 유지된 가운데 집값 추이를 살펴보면 규제가 강했던 시기에 오히려 집값 상승 폭이 뚜렷했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부동산뱅크와 KB부동산 시세정보를 활용해 정권별 서울 아파트값 변동을 분석한 결과, 노무현 정부 임기 말 아파트 가격은 집권 초와 비교해 8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때는 119%나 올라 역대 정권 가운데 최고치를 찍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21% 상승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10%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 3년간은 상승폭 자체는 1%였으나, 말기에는 서울 강남과 비강남 아파트 가격 격차가 3.2배로 다른 정부 시절보다 컸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후 첫 부동산 정책인 6·27 대책에서 영끌을 억제하기 위해 6억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주택 매수 시 6개월 내 전입신고 의무도 생기면서 갭투자도 원천 차단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대출 규제는 맛보기에 불과하다”고 밝히며 향후 강도 높은 추가 부동산 대책을 예고했다. 주담대 한도 축소에 이어 LTV 비율 추가 축소, DSR 강화, 다주택자 금융 규제 강화 등이 연속적으로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세대출, 중도금대출까지 규제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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