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며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되살아나고,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기조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다만 시장에선 금 가격을 두고 거의 최고점에 다다랐다는 전망과 탄력을 받고 오를 것이라는 예측까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12일 KRX 금시장에서 이날 1㎏짜리 금 현물은 1g당 9만2000원 초반에 거래 중이다. 1㎏짜리 금 현물은 지난 8일 KRX 금시장에서 장 중 1g당 9만2530원까지 올라 2014년 KRX 금시장이 거래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 가격은 지난해 중반 8만원 선에서 움직이다가 점차 올라 최근에는 9만원대를 돌파했다.
금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오르면서 국내에선 실물 금을 매수하는 움직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판매된 골드바는 약 66억1922만원으로 집계됐다. 월간 기준으로 지난해 10월(약 79억원)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실제로 5대 은행에서 골드바 판매액은 지난해 11월(34억원)을 기록한 이후 12월(51억원), 올해 1월(56억원), 2월(66억원) 등 증가하는 추세다.
금 값은 연초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다가 이달 들어 미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제기되면서 급등했다.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전망이 굳어진 가운데 최근 공개된 미국 경제 지표 둔화로 조기 인하 기대감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2월 ISM 제조업지수가 47.8포인트로 예상보다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신규 수주와 생산이 모두 위축 국면에 머물면서 경제 지표가 다소 약화되자 미 연준의 금리 인하에 도리어 긍정적인 신호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금 가격이 올랐다”며 “중국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위축을 우려하는 중국 소비자들이 금 실물을 활발히 매입하고 있는 현상도 금값 상승의 이유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지금의 금값 상승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금 가격 상승을 점치는 쪽에서는 명목 기준으로 보면 역사적 고점이지만 실질 가격 기준에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아직까지 가격 레벨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며 “과거 2차 오일쇼크 당시 금의 실질 가격이 온스당 2300달러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최소 7%의 추가 상승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통화정책 ‘완화’ 구간에서 강세 사이클(Bull Cycle)을 보이는 금 가격 상승세는 이제 본격화된 것”이라며 “금 투자에 대한 ‘비중 확대’ 의견을 유지하고 올해 가격 예상 범위와 장기 목표를 각각 2000~2330달러와 2600달러로 상향 조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의 금 가격 상승이 역대 최고치를 돌파하면서 단기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전 연구원은 “금 가격이 본질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실질 금리가 하락하고 미 달러가 약세를 보여야 하는데, 미 달러와 금리 모두 아직 방향성을 명확하게 잡지 못한 상황”이라며 “금 가격은 연말까지 강보합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나, 현재 가격은 밴드 상단에 근접한 것으로 보여 단기 조정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6월부터 미국의 금리 인하가 시작된다면 미 달러 약세와 실질금리 하락이 유효하겠지만, 그 폭이 크지 않고 경기 침체 우려도 제한돼 금 가격이 일방적으로 오를 장세는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금 자산의 경쟁자이자 나스닥 지수와 동행하는 비트코인의 오름세도 금 값 상승을 제한하는 요소로 꼽힌다.
최 연구원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인 금 가격과 달리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연초 대비 15억 달러가 유출된 반면, 비트코인 관련 ETF의 자금은 99억5000만 달러가 유입됐다”며 “2021년 금의 헷지 수요를 비트코인이 강탈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금 가격의 상승 속도를 둔화시킬 방해 요소”라고 분석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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