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①]와인을 따라… 중세를 만나다

와인의 수도 보르도는?
2006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18세기 도시 모습 그대로 보존
프랑스 남서부 대서양에 연안 보르도. 프랑스를 가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 이름만큼은 알고 있다. 보르도가 ‘프랑스 와인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얕은 구릉을 따라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마다 사연과 모양이 다른 아름다운 성(샤또)도 포도밭을 따라 이어져 한폭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그러나 보르도에는 샤또만 있는 게 아니다. 18세기 유럽의 번화한 도시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보르도 시가지가 있다. 또 가난한 자를 어여삐 여겼던 한 성직자의 따뜻한 이야기가 스민 와인마을, 생테밀리옹이 있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두 곳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보르도를 여행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가론강변을 따라 늘어선 18세기에 지어진 화려한 건물들. 이 건물들은 와인 양조기술의 발전과 함께 큰돈을 벌기 시작한 와인 도매상들이 세운 것이다.
보르도는 프랑스 6대 도시이자 세계 와인시장을 호령하는 프랑스 와인의 메카다. 그렇다고 대도시를 연상하면 안 된다. 보르도의 인구는 24만3000여명.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도시는 18세기 유럽의 거리풍경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바로, 가론강을 따라 늘어선 와인 네고시앙들의 화려한 건축물과 중세부터 요새가 자리한 ‘올드 보르도’가 그 주인공이다.

보르도는 18세기 초 와인기술의 발전과 함께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보르도 사람들은 와인을 저장하는 방법을 몰랐다. 와인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해야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상인들이 오크통에 와인을 저장하는 방법을 전해주면서 보르도의 양조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이때부터 보르도는 사시사철 바쁜 항구로 거듭난다.

자정 무렵의 대극장 앞 광장. 해는 졌지만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유럽의 무역상들은 대서양과 닿은 가론강을 거슬러 보르도를 찾아왔다. 이들에게 와인을 공급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네고시앙이다. 이들은 농부들이 수확한 포도를 사들여 와인을 빚어 상인에게 팔았다. 그들이 와인을 빚고, 오크통을 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들이 지금 가론 강변 샤르트롱 지역에 성벽처럼 늘어서 있다. 5층 높이로 지어진 이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구릿빛 팔뚝의 사내들이 골목마다 오크통을 굴리며 나오는 장관이 떠오른다.

네고시앙의 화려한 날들은 1975년 보르도의 항구가 가론강 건너편으로 옮겨가면서 끝이 났다. 물건을 싣고 내리던 하역장은 폐쇄됐다. 그러나 1995년 주페 시장이 부임하면서 시가지는 다시 부활했다. 주페 시장은 방치됐던 강변의 시설을 폭 100m, 길이 4.5㎞의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주페 시장은 또 올드 보르도를 오가는 길에 궤도를 따라 달리는 전차도 개통시켰다. 이에 따라 18세기 복고풍의 아름다운 건축물 사이로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한 전차가 오가는 특별한 풍경이 완성됐다. 과거와 미래의 조화로운 공존, 이것이 유네스코가 2006년 보르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다. 

보르도의 중심에 자리한 대극장이 날이 저물자 노란색 조명에 물들고 있다.

보르도의 아름다움은 올드 보르도에서 한껏 빛을 발한다. 이곳은 18세기 무역항으로 성장하기 전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던 중세의 요새다. 그러나 무역항으로 활성화되면서 성곽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역시 네고시앙의 집들이 늘어섰다. 그러나 요새 안의 미로처럼 얽힌 골목과 집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가론강에서 성벽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포르트 카이유’를 통해 들어서면 얽히고 설킨 골목이 펼쳐진다. 골목의 바닥에는 주먹만한 잔돌이 촘촘히 박혀 있다. 골목은 차 한 대 지나기 벅찰 만큼 비좁다. 그 골목을 따라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중세의 골목을 요리조리 거닐며 과거의 향수에 취한다.

올드 보르도의 매력은 늦은 저녁부터 한껏 농익기 시작한다. 북위 45도의 보르도는 여름이면 오후 10시는 돼야 어둑어둑해진다. 사람들은 저녁햇살이 오렌지빛으로 타오르는 오후 8시쯤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올드 보르도의 골목은 레스토랑마다 펴놓은 테이블로 골목 전체가 야외 카페로 변신한다. 그 테이블에 앉아 동행과 와인을 마시며 정담을 나누거나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을 무심한 눈길로 흘려보내는 일은 행복하다. 보르도의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보르도(프랑스)=글·사진 스포츠월드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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