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뉴스①]상상력과 바람난 사극, 허풍(虛風)? 신풍(新風)?

KBS-1TV ‘대왕 세종’(왼쪽), MBC TV ‘이산’(위),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렸던 MBC TV ‘태왕사신기’(아래)
 사극이 역사교과서와 같다는 비유는 이제 고린내를 폴폴 풍기게 됐다. 역사적 사실의 재현이라는 사극의 기본 축이 갈수록 요동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극 세상에는 윙크하는 왕도 있고, 선글라스로 멋을 부린 채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고전 영웅도 있다. 현대의 네티즌 용어도 섭렵했을 지 모르는 그들에게 수년전 사극의 정격화된 고어체로 말을 시켰다가는 ‘즐’이라는 일갈을 당할 수도 있다. 2008년에도 계속되고 있는 사극쇼가 풍부한 상상력의 거침없는 질주로 화제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일 새해 신작으로 돛을 올린 KBS 2TV ‘쾌도 홍길동’이 퓨전사극이라는 장르와 작가진(홍자매)의 이력 때문에 남다른 모양새를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를 웃도는 파격으로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더니, 5일 출항한 KBS 1TV 정통사극 ‘대왕세종’마저 첫회부터 ‘정말?’이라는 확인을 요하는 설정을 내밀어 사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올연말에는 문근영의 안방컴백작으로 화제를 모은 ‘바람의 화원’을 통해 조선후기의 천재화가 신윤복이 남장여자였다는 성 뒤집기 한판도 펼쳐질 예정이다.
KBS-2TV ‘쾌도 홍길동’

테크노섹시댄스를 추는 한복입은 무희들, 정체불명의 왕(광휘), 시대 및 국적미상의 복식 등이 난무하는 ‘쾌도 홍길동’은 과연 사극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마저 주고 있는 상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서자였다는 사실과 아웃사이더의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홍길동에 대한 기본 뼈대만 그대로 둔 채 나머지는 다 해체하고 조립한 이 드라마는 사극의 탈을 쓴 현대극, 혹은 실사 애니메이션의 모양새로 사극과 상상력의 만남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잘 안다고 여기는 조선 최고의 성왕인 세종을 다룬 ‘대왕세종’도 복권을 노리는 고려의 왕족 옥환(김명곤) 세력한테 미래의 세종인 충녕대군이 납치를 당한다는 낯선 설정을 도입부에 삽입해 이채를 띠었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논픽션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드라마의 한 장르인 사극이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류의 ‘X파일’을 첨부하고, 가상의 멜로라인 등을 가미해 극적 재미를 부양해온 것은 새삼스럽게 놀랄 일이 아니다.

사극의 최신 히트 목록에 올라있는 MBC ‘주몽’, KBS 1TV ‘대조영’ 등도 역사왜곡의 혐의에 수차례 휘말렸다.

지난해 광개토대왕이라는 실존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도 판타지의 이름으로 ‘믿거나 말거나’ 식 허구의 신화를 자유자재로 풀어낸 MBC ‘태왕사신기’ 같은 별종도 장르로 굳이 분류하면 사극이었다.

그러나 2008년을 수놓는 사극들은 홍길동, 세종 등 사극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를 앞세워 새로운 감각 및 해석을 추가해 좀 더 적극적이고 본격적으로 익숙한 텍스트의 해체와 전복을 시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할머니 품에 안겨 듣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의 거울로서 사극의 현재성을 입증하려는 몸부림과도 연관있는 대목. ‘대왕세종’과 ‘쾌도 홍길동’의 제작진은 아주 다른 색깔의 사극을 제조하고 있음에도 21세기 리더십과 현대에 통하는 영웅담을 전하고 싶다는 유사한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팩트에 신세를 진 사극이 상상력과 사랑에 빠졌을 때 자칫하면 그것은 순정이 아니라 방종이나 불륜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 젊은층도 매료시킬 수 있는 재기발랄함은 픽션을 전제로 삼은 극에서는 무제한 통할 수 있는 미덕일 수 있어도 현대인의 뿌리와 정신과 관련있는 역사 텍스트는 새로움과 다름의 욕망에 의해 마구 요리될 수 있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사극계에 가속화하고 있는 상상의 바람이 고증, 개연성, 이데올로기 등 중요한 기본기와 진지한 고민을 상실한 경박한 허풍일지, 역사적 진실과 바람직한 가치를 따라잡는 흥미진진한 훈풍일지, 까다로운 분별의 시선을 요구하고 있다.

스포츠월드 조재원 기자 otaku@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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