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카잔 이슈] 똑같은 ‘오류’에 4년 허비한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월드=카잔(러시아) 권영준 기자] 오류를 증명하는 데 또 4년의 세월을 허비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 일정이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다.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상대로 2-0,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대표팀은 앞선 1, 2차전 패배로 승점 3(1승2패), 조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비록 목표로 삼았던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충분히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다만 성적과 결과를 떠나서 내용 측면에서 조별리그를 평가하자면, 여전히 준비 부족에 발목 잡혀 세계 축구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4년 전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의 고통 속에서 느껴야 했던 ‘오류’의 경험을 다시 한번 새겼다.

한국 축구는 브라질월드컵 직후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을 선임하며 혁신을 예고했다. 하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 성공의 길을 걸어본 경험이 없는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의 흐름 변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성적에서는 애초 ‘실리 축구’라는 명목하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외국인 감독에게 기대하는 시스템의 변화는 이끌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책임이 더 크다. 협회는 큰 줄기에서 혁신의 씨앗을 뿌리고 변화의 싹을 틔우는 일을 주도해야 한다. 철학을 주입하고, 이 철학을 관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및 체계화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협회의 모습은 좋은 감독을 영입해, 그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감독이 바뀔 때마다 대한축구협회의 축구 철학이 계속 바뀌게 되고, 한국 축구의 색깔이 없어지게 된다.

슈틸리케 감독 시절도 마찬가지다. 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에 모든 것은 맡기며 뒤로 빠졌다. 실제로 당시 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하면서 ‘유소년 축구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한국 축구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도자’를 선임 조건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럴듯하지만 터무니없는 말이다. 유소년 축구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철학을 만들어가야 할 것은 협회지, 감독이 아니다. 감독은 대표팀이 얼마나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대표팀 감독이 유소년 축구까지 신경 써야 하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슈틸리케 전 감독의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 축구를 떠난 슈틸리케 전 감독은 최근 월드컵을 바라보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대부분 자격지심에서 나온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이 가운데 협회를 향한 목소리를 분명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 소리는 감독 재직 기간에 했어야 했다. 감독 재직 시절 협회를 향해 현재처럼 과감하게 문제점을 제기했다면 한국 축구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도 ‘돈의 노예’나 다름없다.

철학 없는 협회와 슈틸리케 감독의 조우는 새드엔딩으로 끝났다. 그것도 지저분하게. 월드컵 개막을 1년 남긴 시점에서. 이때부터 모든 게 임시방편이었다. 신태용 감독을 선임하면서 스페인 코치단을 선임한 것이 대표적 예다. 협회는 생전 처음 만난 잔뼈 굵은 지도자들이 몇 개월 만에 환상의 호흡을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선수 선발부터 시작해 실험, 점검, 실전 모의고사까지 모든 것을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처리해야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베스트11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스웨덴-멕시코-독일전까지 전 경기를 생전 처음 보는 조합으로 경기를 치렀다. 독일전 승리로 가려질 수 있는 민낯들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국 축구의 수준이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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