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홀드왕’인데도 선뜻 믿고 맡기기 어렵다. 시속 150㎞ 안팎의 강속구를 뿌리는 스기모토 코우키(KT)를 향한 시선이다. 그렇다고 구위를 외면할 수도 없다. 삼성 강타선을 힘으로 제압할 카드가 절실한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마법사들이 마주한 딜레마다.
KT는 지난 4일 수원 KT 위즈파크서 열린 삼성과의 2026 신한 SOL KBO KS 2차전에서 연장 12회 끝에 2-3으로 패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은 1승1패 원점이 됐다. 6일부터 대구에서 사흘 연속 경기를 치른다. 선발진은 제 몫을 했지만 불펜 운용은 쉽지 않았다. 1차전에는 8점 차 리드가 한 점 차까지 좁혀졌고, 2차전에는 선발 고영표에 이어 구원투수 7명을 가동하고도 웃지 못했다.
스기모토의 2차전 등판이 단적인 장면이다. 1-1로 맞선 10회 초 선두 김지찬에게 초구 몸에 맞는 공을 허용했다. 희생번트와 자동 고의4구로 1사 1, 2루가 된 뒤 박승규의 잘 맞은 타구는 중견수 샘 힐리어드의 호수비에 걸렸다. 이강철 KT 감독은 전용주로 투수를 바꿨다. 뒤이어 르윈 디아즈의 적시타가 나오면서 스기모토가 내보낸 주자가 홈을 밟았다(1-2).
사령탑은 “스기모토가 사구를 던졌고, 다음에 정타가 나와 힘들겠다고 생각해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빼어난 구위에도 벤치의 믿음을 온전히 얻지 못했던 정규리그 때 고민이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지고 있다.
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스기모토의 올 시즌 포심 평균 구속은 149.5㎞로 팀 내 1위다. 마무리 박영현(148.9㎞)보다도 빠르다. 단순 공만 빠른 투수가 아니다. 묵직한 직구로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찌르며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특히 7월에만 삼진 19개를 솎아내며 평균자책점 1.38을 마크하는 등 위력적인 투구의 편린을 드러냈다. 다만 그 모습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다. 홀드 선두(25개)에 올랐지만, 시즌 평균자책점은 5.90에 달했다. 한때 임시 마무리 후보로도 거론됐지만, 기복이 이어지면서 필승조 밖으로 밀리기도 했다.
문제는 KT가 다른 카드에서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삼성의 좌타 강타선을 겨냥한 승부수가 기대만큼 통하지 않았다. KT는 1차전에서 좌완 로건 앨런과 오원석을 투입하고도 추격을 허용했고, 2차전에는 전용주가 디아즈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이유가 있다. 삼성의 정규리그 좌완 상대 팀 OPS(출루율+장타율)는 0.823이다. 이 가운데 구자욱(0.368)과 최형우(0.325)는 이 조건서 타율이 3할을 웃돌았고, 디아즈도 OPS 0.853을 써냈다. 단순 좌우 상성만으로 공략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 점이 승부를 가르는 가을야구에선 강한 구위로 타자를 압박하고 헛스윙을 끌어내는 능력이 한층 값지다. 냉정하게 현시점 KT에서 그 임무를 가장 확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투수는 박영현뿐이다.
그에게 쏠린 무게가 상당하다. KS 1·2차전 모두 8회부터 등판해 각각 1⅔이닝을 책임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2차전 조기 투입을 두고 “안 쓰고 지는 게 더 후회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영현이 9회까지 버텨도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승부는 연장 12회까지 이어졌고, KT는 끝내 추가 실점을 피하지 못했다.
휴식일 없는 대구 3연전이 기다린다. 박영현의 멀티이닝 투구가 반복되더라도 그 한 명에게 모든 고비를 맡길 순 없다. 물론 시즌 내내 널뛰기를 탄 스기모토가 단번에 믿음을 되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KT에 그만한 구위를 갖춘 투수도 드물다. 홀드왕이 한 이닝만 온전히 책임져도 마법사 군단의 후반 승부수는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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