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생후반전] 농구 때문에 눈물 흘린 소녀, 레전드를 넘어 누군가의 버팀목으로...하은주 "그마저도 자산이 됐다"

여자농구 레전드 하은주.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여자농구 레전드 하은주.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오늘 무릎 상태는 어떻습니까?” 경기 전이면 늘 들려오던 질문이었다. 그날의 승패가 그의 무릎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통산 240경기 2019점, 여섯 차례 우승. 하지만 한 소녀가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거듭된 무릎 수술과 어린 시절 농구계에서 받은 상처, 낯선 일본 땅에서의 도전까지. 그럼에도 다시 농구공을 잡아 기어코 레전드 반열에 올랐다. 파란만장한 서사의 주인공은 바로 하은주 KBSN 해설위원 겸 레이업 리컨디셔닝 센터 대표다. 이제는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참고 이겨낸 하루하루

 농구 DNA를 제대로 물려받았다. 국가대표 출신 하동기 씨의 딸이자 하승진(은퇴)의 누나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체격을 자랑했지만, 당시 한국 농구계는 어린 인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하 위원이 처음 무릎 수술을 받은 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찢어질 듯 아팠지만 ‘모두 이 정도는 참고 농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 모처럼 경기장을 찾은 아버지는 한 농구인에게 ‘딸이 절뚝거린다고 소문났다’는 말을 들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실제로 딸은 절뚝이며 코트를 뛰고 있었다. 아버지는 곧장 딸을 대학병원으로 데려갔고, 하 위원은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아픈 건 무릎만이 아니었다.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았다. 수술 후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농구계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말까지 돌았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를 붙잡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 내가 뭘 잘못했어? 왜 아무도 오지 않아”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코트를 떠났다.

사진=WKBL 제공
사진=WKBL 제공

 평범한 학교생활을 되찾아 공부에 매진했지만 농구부는 그를 다시 불러냈다. 수업 중에도 방송으로 호출했다. 못 이겨 복귀했으나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견디지 못해 다시 그만뒀다. 전학을 결심하자 이번엔 ‘다시는 농구하지 않겠다’는 포기 각서를 요구받았다. 결국 각서를 썼고, 선수 등록까지 말소됐다.

 

 하 위원은 “무릎이 아팠지만 ‘국가대표가 되려면 다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에 무식하게 참았다. 병원에 갔을 때도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 수술이 끝나고 알았다. 수술 후 아무도 병문안을 오지 않은 건 충격이었다”면서 “이후 공부를 곧잘 했지만 지나가는 농구부 애들은 영웅, 나는 패배자처럼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엔 학교를 옮기면 1년 동안 선수 등록이 안됐다. 어차피 전학 가도 못 뛰는데 포기 각서까지 쓸 필요가 있었을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서도 “당시 전학 갈 학교는 성적을 중요시한 터라 나를 반기지 않았는데, 가서 내가 반 평균 올려주고 졸업했다”고 웃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놨다. 하 위원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뒤 어린 시절 만났던 농구인과 재회했다. 그는 “어릴 땐 너무나 크고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다시 보니 작고 연약한 할아버지가 돼 있었다”며 “그때 ‘나의 적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사람도 마음도 없이 다 버렸다. 그마저도 자산이 된 지금”이라고 말했다.

사진=WKBL 제공
사진=WKBL 제공

◆아빠는 사기꾼

 농구판을 떠났어도 키는 계속 자랐다. 190㎝를 넘어서자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권했다. “너를 아무도 모르는 데서 편하게 무엇이든지 해보는 게 어떻겠니”라며 “오오카고가 농구로 명문이고, 네가 농구 장학생으로 들어가지만 농구는 안 해도 된다”고 설득했다.

 

 한 번 닫힌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당시 오오카고를 이끌던 이노우에 신이치 감독이 직접 한국을 찾았다. 하 위원은 “만약 가자마자 다치면 나를 버리실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노우에 감독은 ‘버린다’는 표현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내가 너를 데려가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널 책임지겠다.” 그 말에 하은주는 일본행을 결심했다.

 

 하 위원은 “‘버린다’는 말에 의아해하던 감독님의 눈빛이 선명하다. ‘버린다는 말도 쓰기 싫은데, 네가 썼으니 사용할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을 거야’라고 하셨다”며 “그 전까지 나에겐 선수를 위하는 지도자가 없었다. 그 말에 일본행을 선택했다. 또 오오카고엔 트레이너가 있었다. 재활 환경도 좋아 ‘공부하고, 무릎도 고치자’는 생각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사진=WKBL 제공
사진=WKBL 제공

 언어도 통하지 않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처음 농구의 즐거움을 느꼈다. 하 위원은 “공부랑 운동을 모두 다해야 했다. 청소 당번도 했었다. 당연한 학생의 삶이 정말 좋았다”며 “그 전까지 농구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농구를 생각하면 끔찍했었다. 근데 일본에서 배우고 늘면서 농구가 재밌다고 처음 느껴봤다”고 돌아봤다.

 

 이후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W리그 샹송화장품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신인왕을 차지했고, 두 시즌 연속 우승도 경험했다. 그러나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을 추진하면서 소속팀과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W리그에서 뛰기 위해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일본 국가대표 유니폼만큼은 입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이와 함께 WNBA 구단의 제안이 오면 이적을 허용한다는 조건도 계약에 넣었다.

 

 LA스팍스에서 제안이 왔지만 진출은 무산됐다. 하 위원은 “소속팀이 계약상에 문제가 없다는 서류를 보내줘야 했다. 어차피 한 시즌 뛰고 다시 돌아올 건데 안해주더라. 마감일까지 질질 끌다가 얘기하더라. 일본 국가대표를 하라는 이야기였다. 동생은 태극기를 달고 뛰는데 내가 어떻게 일본팀으로 뛰나”라며 “그 길로 바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일본은 성장의 땅이었다. 하 위원은 “처음 일본에 갈 때 아버지가 ‘공부만 해도 돼’라고 설득했던 걸 두고 아직도 ‘사기꾼’이라고 부른다”고 웃은 뒤 “해설할 때 선수들과 일본어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팬들이 멋있다고 연락을 많이 주셨다. 당시엔 실패해서 일본에 갔지만, 20년이 흘러서 나의 엄청난 무기가 됐다. 이제는 어릴 적 나를 버리고 포기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해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미소 지었다.

사진=WKBL 제공
사진=WKBL 제공

◆사형선고 받은 무릎도 다시 뛴다

 한국으로 돌아온 하은주는 신한은행에서 여섯 차례 우승을 일궜다. 그러나 매일 무릎과 싸워야 했다. 경기 당일에도 출전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시점, 스포츠심리학으로 눈을 돌렸다. 2012년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박사 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이어갔다.

 

 하 위원은 “무릎이 안 좋다 보니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멀쩡히 워밍업까지 해놓고 무릎이 말썽을 부렸던 날이 많았다. 멘털적으로 힘들었다”면서 “공부와 운동을 함께하다 보니 정말 막판엔 팀과 선수를 심리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코트 밖에서 팀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하 위원은 “내가 1분도 못 뛸 땐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코트 리더와 라커룸 리더는 다를 수 있다”며 “나의 말 한마디에 뛰는 5명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걸 실제로 봤다”고 설명했다.

 

 실수를 두려워하던 후배에게는 ‘미스 하지마’ 대신 ‘1초 더 생각하고 패스해도 괜찮아’라고 조언했다. 그날 후배는 실수하지 않았다. 하 위원은 “심리는 정말 재밌고 중요하다”며 “은퇴 후 선수들과 상담도 진행했는데 좋아지는 선수들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여자농구 레전드 하은주.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여자농구 레전드 하은주.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마음을 돌보는 일, 그 다음은 몸이었다. 은인은 현재 레이업 리컨디셔닝 센터를 함께 이끌고 있는 박은경 이사다. 하 위원은 한때 의사에게 은퇴를 권유받을 정도로 무릎 상태가 심각했다. 당시 신한은행 트레이너로 영입된 박 이사의 밀착 관리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2018년 함께 재활운동 센터를 열었다.

 

 하 위원은 “이사님께 10년 동안 ‘은퇴하면 선생님이랑 재활운동 센터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람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덕분에 선수 생활을 10년이나 더 할 수 있었다. 당시 병원을 찾았을 땐 ‘사형’이라며 은퇴를 권유했다”며 “나처럼 할 수 있는데 안 된다고 하니까 포기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더라.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이어 “박은경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정말 사방이 막힌 느낌이었다.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사님을 만나고 어떤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선수들도 느꼈으면 한다”면서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관절염이 있는 분도 재활을 잘하고 나면 매일 아침 공원을 걷는다. 삶을 되찾아주는 느낌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고, 지금도 그걸 지켜가는 중이다. 우리가 축적한 노하우와 지식을 전국의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WKBL 제공
사진=WKBL 제공

◆농구 붐은 온다

 농구공은 내려놨지만 여전히 가을이 되면 더 바빠진다. 해설위원으로서 여자농구 현장 곳곳을 누비며 중계에 재미를 더한다. 올 시즌은 유독 더 기대감이 크다. 선수 시절 ‘레알 신한’을 같이 이끌었던 동료들이 사령탑으로 지략 대결을 펼친다. 주인공은 전주원 우리은행 신임 감독과 최윤아 신한은행 감독이다. 더불어 12년 만에 한국에 아시안게임(AG) 메달을 안긴 후배들이 WKBL서 치열하게 맞붙는다.

 

 하 위원은 “두 분과 함께 뛸 때 항상 ‘두 사람은 나중에 뭘 하든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농구를 사랑했다. 농구 외 자신의 삶은 없는 사람 같았다.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도 모두 농구를 위해서였다”면서 “특히 주원 언니는 아이가 있었고, 어렸다. 서로 보고 싶었을 텐데, 꾹 참고 프로답게 뛰었다. 대단한 사람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모범이 된다는 면에서 둘 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박신자컵 때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최 감독이랑 참 많이 뛰었는데, 최 감독은 여전히 저기에 있네’라는 생각을 했다”며 “결승 때는 주원 언니랑 (강)영숙 언니(우리은행 코치)가 벤치에 서 있더라. 둘 다 나랑 오래 본 사람들인데, ‘친한 사람이 정말 많네’ 싶으면서 응원하게 되더라”고 미소 지었다.

사진=WKBL 제공
사진=WKBL 제공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후배들의 실력도 기대가 된다. 이번 2026 아이치·나고야 AG 전 마지막 여자농구 금메달은 하 위원이 뛴 2014 인천 AG다. 그는 “내가 대회를 나간 이후로 한동안 금메달이 없지 않았나. 항상 아쉬웠다”면서도 “이번엔 기대가 됐다. (박)지수, (박)지현이 없었지만,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도 좋았다. 팀을 잘 만든 것 같다는 생각했다. 사실 나는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이 고비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딱 이겨주더라. 금메달 따겠다 싶었다”고 웃었다.

 

 이어 “농구 붐이 다시 일어나면 정말 좋겠다. 이번 메달을 계기로 사람들이 ‘농구도 재밌네’라고 느끼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기대를 좀 해본다”고 덧붙였다.

 

 하 위원만의 AG 비하인드도 있다. 하 위원은 인천 AG에서 금메달, 그보다 앞선 2010 광저우 대회에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인천 대회 금메달을 잃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나?’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금메달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집 지하 깊숙한 곳에서 찾아냈다.

 

하 위원은 “선수 때 물건들을 쌓아놓은 곳에 있었다”고 웃은 뒤 “반전이 하나 더 있다. 은메달이 2개다. 광저우 대회 은메달만 2개더라. 하나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의 은메달을 갖고 있는 걸까. 주인을 못 찾겠다. 그 12명이 뻔한데, 아무도 연락이 안 온다. 이번 기회에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