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폭로는 어떻게 ‘콘텐츠’가 되고, 누군가의 불행은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수익이 되는가.
20년 차 연예기자 강경윤이 허위조작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을 추적한 신간 ‘파괴자들’을 펴냈다. 직접 취재한 사건과 자신이 겪은 소송 경험을 바탕으로 거짓이 돈이 되는 구조와 그 과정에서 무너지는 개인의 삶을 기록했다.
책 제목인 ‘파괴자들’은 타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훼손하고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는 ‘파괴’의 범위는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실처럼 퍼지고, 자극적인 폭로가 조회수와 수익으로 연결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회가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과 서로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린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폭로가 돈이 되는 순간, 진실은 뒤로 밀렸다
강 기자는 웨이브(Wavve) 독점 다큐멘터리 ‘포식자들: 사이버 레커, 전쟁의 기록’에 그간 취재 과정을 털어놔 전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신간 ‘파괴자들’은 사이버 레커 개인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폭로와 의혹이 하나의 수익 모델로 작동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사이버 레커와 슈퍼챗,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맞물리면서 자극적인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를 짚는다. “제보를 받았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라는 말 뒤에서 검증과 책임이 사라지는 상황도 지적한다.
반면 잘못된 정보의 대상이 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최초의 폭로는 빠르게 확산되지만 당사자의 해명이나 뒤늦은 정정은 같은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책은 박수홍, 김건모, 오메가엑스 등 실제 사건을 통해 의혹이 제기된 뒤 사실관계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까지 어떤 과정이 이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잘못된 정보가 바로잡히더라도 이미 훼손된 평판과 일상을 되돌리기 쉽지 않은 현실도 함께 다룬다.
저자는 ‘가짜뉴스’ 대신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부터 피해 구제를 위한 징벌적 배상 등 제도적 과제까지 짚는다.
▲버닝썬 취재 기자가 허위조작정보의 표적이 되기까지
저자 강경윤은 2019년 빅뱅 출신 승리와 관련한 단독 보도를 시작으로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를 취재·보도한 기자다.
2007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2012년부터 SBS 연예기자로 일한 그는 연예계 결혼과 열애 등에서 출발해 점차 연예산업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로 취재 영역을 넓혀왔다.
버닝썬 사건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을 받았으며, 2024년에는 영국 BBC가 해당 취재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소개했다.
하지만 사이버 레커 문제를 추적하던 강 기자 자신도 허위조작정보의 대상이 됐다. 타인의 피해를 취재하던 기자가 직접 공격의 표적이 되면서 허위조작정보가 특정 연예인이나 유명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하게 됐다.
저자는 자신이 피해자로 나선 재판에서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됐음에도 “재판에서 이겼을지언정 나는 위너가 아니었다”고 적었다. 법적 판단을 받는 것과 무너진 일상을 되찾는 것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2026년 2월에는 연예 뉴스를 허위조작정보가 생산·유통·소비되는 산업 구조로 분석한 논문으로 국민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틀로 ‘K-IDF’ 모델도 제시했다.
▲기자 자신에게도 질문을 돌린 ‘파괴자들’
책은 프롤로그와 6개의 TRACK, 26개 장, 에필로그로 구성됐다.
폭로가 돈이 되는 구조에서 시작해 진실을 말한 사람이 치러야 했던 대가, 조회수 경쟁 속 기자의 고민, 직접 표적이 된 저자의 경험, 2025년 한 배우의 부고 뒤 벌어진 일, 거짓에 책임을 묻는 법정의 현실까지 이어진다.
각 TRACK 끝에는 허위조작정보가 확산되는 구조를 설명하는 글도 배치했다. 개별 연예계 사건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왜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특히 저자는 사이버 레커만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기자인 자신 역시 조회수 경쟁에서 자유로웠는지를 돌아본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마주한 “보도하기 전에 본인이 검증하셨어야죠”라는 질문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누군가의 허위정보를 비판하는 기자 역시 자신의 보도를 얼마나 검증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도 ‘사실 확인’에 공을 들였다. 사건 날짜와 판결 내용, 기사와 관련 자료를 대조하고 출처를 주석으로 남겼다. 허위조작정보와 알고리즘, 플랫폼, 징벌적 배상 등 관련 개념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무엇을 믿었나”보다 “무엇을 확인했나”
에필로그에는 강 기자가 6년 전 취재로 인연을 맺은 가수 김건모를 다시 만난 이야기도 담겼다.
김건모는 저자에게 “28년 동안 쌓은 탑이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강 기자는 그 말을 통해 자신이 왜 이 기록을 남기려고 했는지 다시 돌아본다.
‘파괴자들’에는 박수홍, 최욱, 오메가엑스를 비롯해 언론인과 방송인 등의 추천사도 실렸다.
박수홍은 “더 이상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누군가의 수익이 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고 했고, 오메가엑스는 “누군가의 삶이 몇 마디 말로 쉽게 단정되는 세상에서 이 책이 우리에게 준 용기가 아직 말하지 못한 누군가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강경윤 기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취재한 사건을 통해 독자에게 정답을 대신 내려주기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묻는다.
유튜브 영상과 뉴스, SNS의 폭로를 매일 접하는 시대. ‘파괴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향한다. 무엇을 믿었느냐보다, 그것을 믿기 전에 무엇을 확인했느냐는 것이다.
강경윤 지음, 236쪽, 스노우폭스북스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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