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민아·허각·이하이·에프엑스 루나·위너 강승윤 등 수많은 K-팝 스타의 목소리를 다듬어 온 아카데미 모래공장 대표 겸 K컬쳐교육중앙회 수석 교육위원장 김효준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내 주요 기획사 아티스트와 수많은 연습생을 지도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K-팝 교육 시스템을 해외에 전파하겠다는 목표다.
국내 대표적인 보컬 트레이너 중 한 명인 김 대표는 SM·YG·JYP·하이브 등 국내 4대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를 모두 지도한 유일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한때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오른 네 팀이 모두 자신의 제자였던 적도 있을 정도다.
◆가수의 꿈 접고 보컬 트레이너로
처음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꿈은 아니었다. 김 대표 역시 가수를 꿈꿨지만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한 끝에 다른 길을 선택했다.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김 대표는 26일 “메타인지가 빨랐던 것 같다. 노래를 잘해도 가수로서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빠르게 판단했다”고 돌아봤다.
전환점은 일본에서 찾아왔다. 2007년 현지 음반유통사 에이벡스에서 아티스트를 가르칠 기회가 생겼고, 이를 계기로 보컬 트레이닝에 발을 들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시작한 보컬 교육 사업도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소수의 학생으로 출발해 수강생을 늘려가던 김 대표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였다.
프로그램과의 계약이 확정되기도 전에 출연자들을 가르칠 연습실 11개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톱11을 위한 방 11개를 공사하고 있는데 제작진이 미팅을 하러 왔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과감한 투자는 프로그램 트레이닝으로 이어졌고, 대중과 업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여러 방송, 기획사와 인연을 맺으며 보컬 트레이너로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제자 중에서도 허각과 이하이는 유독 기억에 남는 가수들이다. ‘슈퍼스타K2’를 통해 만난 허각에 대해 김 대표는 “당시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일반인에 가까웠지만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다”고 떠올렸다. 당시 심한 고열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때에도 무대를 완벽하게 소화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하이와의 인연도 특별하다. 처음에는 세 차례만 레슨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그렇게 시작한 만남이 무려 4년간 이어졌다.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이하이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살피며 레슨을 이어갔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까지도 이하이의 콘서트를 다녀왔다며 “너무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제자는 가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7년 무렵 이병헌의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으로 배우들과도 인연이 시작됐다. 정우성·박신양·안보현·변우석·송강 등 내로라하는 남자 배우들의 보컬 훈련을 맡았다.
남궁민의 보컬 선생님으로도 활약해 과거 ‘나 혼자 산다’(MBC)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김남길과는 16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노래 두 곡을 부르면 목이 쉴 정도였는데 이제는 28곡까지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남길이 팬미팅을 장시간 진행하고 음악 활동까지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도 김 대표의 보컬 트레이닝이 함께했다.
김남길의 팬미팅 규모가 커지고 공연 시간이 길어지면서 진행자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김 대표가 직접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그는 “팬미팅이 길어지다 보니 MC를 맡을 사람이 없었다. 5시간을 누가 진행하겠느냐”고 웃으며 “결국 김남길이 저에게 하라고 해서 맡게 됐다”고 떠올렸다. 김남길과 오랜 시간 함께해 팬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과거 김민종, 손지창, 안재욱처럼 노래하는 배우로서 완성형 엔터테이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라 계속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더 어려진 연습생·달라진 보컬 트렌드
최근 K-팝 교육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보컬 교육을 시작하는 연령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12세 이상만 교육생으로 받았다는 김 대표는 이제 8세 어린이도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가수를 꿈꾸는 이들만 찾아왔다면 K-팝과 아이돌이 일상생활에 더욱 밀접해진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재능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하는 부모가 많다.
다만 어린 나이에 교육을 시작한다고 해서 반드시 빠르게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다. 남자 연습생은 변성기를 거치면서 목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성장 단계에 맞는 지도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그룹에서 안정적인 메인보컬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이러한 신체적 변화를 짚었다.
아이돌을 선발하는 기준에서도 가창력보다 비주얼이나 성장 가능성이 중요해졌다. 외모와 매력 등 타고난 요소를 고려해 인재를 선발한 뒤 집중적인 트레이닝으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현재 산업의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사실 외모보다는 실력 좋은 친구들이 훨씬 많다. 우리 K-팝 시장에서는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며 “외모가 뛰어난 인재를 찾아 그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모도 괜찮으면서 실력까지 빠르게 향상되는 친구들이 잘 뽑혀간다”며 “특히 머리가 작고 비율이 좋은데, 실력 향상까지 빠르면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기획사에서 바로 연락이 온다”고 설명했다.
음악적 유행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기획사마다 뚜렷한 보컬 색깔이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장르와 스타일의 경계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한동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리스닝 음악이 강세였다면 앞으로는 강한 전자음악 사운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색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해외에서 시장 규모가 큰 EDM과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 K-팝의 글로벌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다양해졌다. 가창력뿐 아니라 외모와 개성, 무대에서 드러나는 매력 등 여러 요소가 중요해지면서 보컬 실력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졌다. 김 대표 역시 “K-팝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퍼포먼스라는 부분이 가장 크다”고 공감했다. 다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팀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음악 자체의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잘 되는 팀은 결국 음악이 좋다. 노래가 좋아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음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식 K-팝 트레이닝의 세계화
오랜 시간 축적한 교육 경험은 새로운 목표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해외에 전파하는 것이다. 현재 K컬쳐교육중앙회 수석 교육위원장을 맡은 김 대표는 K-팝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 강사 양성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회가 운영하는 K컬처사관학교의 전체 교육 프로그램 구성을 총괄하며 보컬과 댄스뿐 아니라 뷰티·푸드·미디어 등 K-컬처 전반을 아우르는 교육 체계 구축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해외 진출은 하루아침에 떠올린 구상이 아니다. 김 대표는 “전 세계에 모래공장과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숙원을 추진한 지 17년이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과 중국 등에서 투자 및 협업 제안을 받았지만 번번이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혔다. 한국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강사들이 해외로 장기간 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가 찾은 해법은 한국의 교육 방식을 현지에 적용하는 것이다. 국내 강사를 비싼 돈 들여 해외로 파견하는 게 아니라 각국에서 활동할 K-팝 전문 강사를 직접 양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각국에 우리만의 트레이너 양성 방식을 입혀서 현지화한 뒤 선생님들이 그 나라에서 K-팝을 가르치고, 특강 파견 등 중앙 관리 시스템으로 지원해준다면 이게 바로 K-컬처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의 수요도 확인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아 보컬과 댄스 교육을 받고 음악방송을 관람하는 등 K-팝 체험 프로그램에 활발히 참여했지만 한한령 이후에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개인 수강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도 부유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K-팝의 현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한중 합작 K-팝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언급한 김 대표는 “현지의 아이들을 데리고 K-팝의 트레이닝 시스템과 제작 시스템을 활용해 현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제대로 된 교육과 제작 능력이 없다 보니 조금은 부족한 아이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식 교육 시스템이 더욱 체계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트레이닝 기술을 해외에 팔아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며 “사실 이런 게 한국을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리사가 조리법을 공개하더라도 누구나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듯 교육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곧 한국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김 대표는 “아무리 그들이 우리를 따라 한다 해도 우리가 될 수는 없다”며 “K-컬처라고 하면 음악, 드라마 같은 매체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교육이라는 K-컬처를 해외에 진출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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