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반드시 낯선 재료와 조리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손종원 조선호텔앤리조트 셰프는 도라지 잡채와 두릅 냉채, 깻잎 부각처럼 이미 우리 식탁에 있는 음식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전통을 깊이 이해하고 오늘의 감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한식의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손 셰프는 지난 23일 제1회 한식의 날을 맞아 열린 ‘2026 한식페스타’ 한식 콘퍼런스에서 강연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전달할 때 브랜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형태를 바꾸기 전, 음식 제대로 이해하기
손 셰프가 강조한 한식 브랜드화의 출발점은 전통에 대한 이해다. 한식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얼마나 한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이런 가치들을 전달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가 바라보는 한식은 음식과 조리법을 포괄하는 생활문화다. 장을 담그고 김치를 만들며 계절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 식사 예절과 음식을 나누는 방식에 한국인의 자연관과 생활방식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현대적인 한식을 만드는 일도 겉모습을 바꾸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조리법의 의미를 이해한 뒤 오늘날의 맛과 식감, 식사 방식에 맞춰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셰프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음식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과 문화”라고 강조했다.
◆도라지 잡채·두릅 냉채… 전통을 오늘의 접시에
손종원 셰프는 이타닉가든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한 사례라고 말했다. 도라지를 활용한 길경잡채는 한식의 맛을 유지하면서 고명을 올리는 방식과 담음새를 달리했다. 두릅 냉채는 두릅을 가늘게 썰고 잣즙으로 만든 양념을 곁들여 계절의 맛을 표현했다.
깻잎 부각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풀을 발라 만든 뒤 반으로 접어 튀기고 안에 단새우를 채웠다. 식재료를 보존해 두고 먹던 조리법을 현대적인 요리에 활용한 것이다.
삼계탕은 닭과 찹쌀밥, 은행, 인삼 등을 한데 담고 육수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삼계탕을 이루는 재료와 맛을 다른 형태로 경험하도록 했다. 쑥설기와 한과 역시 식사의 흐름 안에 담았다.
손 셰프는 “전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현대적으로 담아내는 일들을 하고 있다”며 전통을 보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해를 바탕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식재료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해외에서 요리를 배우던 그는 귀국 초기 익숙하게 사용하던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아쉬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요리를 이어가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신선하고 개성 있는 재료들을 발견했다.
최근에는 나물 등 우리 식재료를 사용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고 소개했다. 프랑스에서 봄철 아스파라거스를 즐기듯, 한국에서는 두릅의 향과 맛으로 계절을 표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음식 맛보며 한국의 풍경 떠올리도록
손 셰프는 전통적인 한식 자체가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최근 프리즈 아트페어와 관련해 마련한 갈라디너를 사례로 꼽았다.
외국인이 다수인 약 200명의 손님에게 어떤 음식을 선보일지 고민한 끝에 그는 전통 한 상을 준비했다. 비빔밥의 한 형태인 골동반과 맑은 송이국, 다섯 가지 찬, 배 안에 백김치를 넣어 숙성한 배백김치 등을 올렸다.
손 셰프는 “우리의 전통 상차림은 현대적인 시각에서도 아름답다”며 “실제 외국인 손님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음식이 한 나라의 장소와 생활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프랑스의 디저트에서 파리의 거리를, 화덕 피자에서 나폴리를 상상하듯 한식에도 한국의 풍경과 문화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속 라면과 소주를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같은 맥락에서 짚었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손종원 셰프는 “전통의 가치를 발견하고, 현대의 언어와 기술로 해석한 뒤, 그 이야기를 진솔하고 자신 있게 전하는 게 한식의 브랜드화”라며 “이미 우리나라에는 좋은 것들이 너무 많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손종원 셰프는 지난 23일 신세계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전문임원으로 승진했다.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두 곳을 동시에 이끌며 쌓아온 전문성과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그가 이끄는 라망 시크레와 이타닉 가든은 각각 2021년과 2023년 처음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획득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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