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만남] 정구에 빠진 소년서 한국 정구의 수장으로…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 “정구 부흥이 마지막 소명”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이 정구 저변 확대와 세계선수권대회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쓰고 있다. 정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이 정구 저변 확대와 세계선수권대회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쓰고 있다. 정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얇은 선수층·엘리트 경기력 저하 실정

추억 속에 머물지 않고 저변 넓히고파

한국 정구협회장·국제연맹회장 역임 중

 

“정구의 저변 확대와 세계선수권대회 성공 개최가 마지막 소명입니다.”

 

지름 6.6㎝의 작은 공이 코트 위를 쉴 새 없이 가른다. 빠른 랠리 속에서 한순간의 판단과 정교한 기술이 승부를 가르는 것, 그것이 정구의 묘미다. 어린 시절 잠시 선수로 활약했다. 코트 위에서 맛본 설렘과 재미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효자 종목이었던 정구는 어느새 비인기 종목이라는 그늘에 가려졌다. 저출산으로 인해 정구를 하는 아이들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무대에서 정구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정구의 부흥을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이 그를 움직였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의 얘기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정 회장은 서울 강남구 연세아이미스템의원 원장으로 의료인을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정구에 대한 애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2021년 1월 제27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난해 1월 연임에 성공하며 정구의 재도약을 위한 두 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11월 국제정구연맹 회장에도 취임했다. 한국 정구의 저변 확대와 국제 경쟁력 회복, 세계선수권대회 성공 개최까지 숙제가 산적하다. 정 회장은 “내 마지막 소명”이라고 눈빛을 번뜩였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이 지난해 9월 문경아시아정구선수권대회에서 선수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사진=대한정구협회 제공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이 지난해 9월 문경아시아정구선수권대회에서 선수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사진=대한정구협회 제공

 

◆우연히 만난 정구

 

정구와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정 회장이 수원 수성중학교 1학년이던 정 회장에게 당시 체육 교사였던 신융선 전 경기체고 교장이 찾아왔다. 운동 신경이 좋았던 정 회장에 “테니스를 해보지 않겠느냐”며 손을 내밀었다. 1970년대 테니스의 인기가 높은 시기였다. 호기로운 마음에 선생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테니스 라켓을 잡은 모습을 상상하며 선수 등록을 하는데, 깜짝 놀랐다. 테니스가 아닌 정구였다. 

 

정 회장은 “선생님께서 ‘야 이게 테니스지 뭐야’ 이러면서 그냥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냥 시작하게 됐다”며 “신동이 났다는 둥 막 칭찬도 해주니까 신나게 했다. 그때는 열심히 훈련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수성중 정구부 창단 멤버가 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실력은 늘지 않았다. 정 회장은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계속 졌다. 소년체전에도 예선전에서 자꾸 떨어져 결국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다.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며 “게다가 불과 1년 반 있다가 정구부가 돌연 해체되면서 더는 못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공부에 전념한 정 회장은 연세대 의대를 거쳐 성형외과 전문의로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40대 후반이 된 정 회장이 신문을 보다가 세계정구선수권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기사를 우연히 읽었다.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배우고 있던 테니스를 접고 곧바로 서울 광진구 동호회에 가입해 다시 정구를 하기 시작했다. 감각이 살아 있었다. 5년 만에 전국 동호인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정구 코트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다 보니 어느새 정구와 관련된 주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전국정구연합회장, 대한정구협회 부회장, 한국실업정구연맹 회장 등을 맡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정구라는 스포츠를 완전히 잊고 살았다. 동호회도 있더라. 처음엔 정말 깜짝 놀랐다”며 “의사가 뜬금없이 정구를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밥도 사주고 술도 사 주더라. 정구에 다시 몸을 담그면서 생활체육으로 10년 가까이 정구를 접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미소 지었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위기 속 희망 싹틔운다

 

취임하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정 회장이 보람을 느끼는 성과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개인전을 도입한 것이다. 기존에는 초등부와 중등부 남녀 단체전만 열려 세부 종목이 4개에 불과했다. 정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4년 대회부터 개인전을 도입했다. 단체전에서 탈락하더라도 개인전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 회장은 “1년 동안 소년체전 출전하려고 운동한 선수들이 딱 한 번 떨어지면 그냥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허망하고 메달 따기가 너무 어렵지 않나. 이제는 금메달이 12개로 늘어났다. 단체전에서 지더라도 개인전에 출전할 수 있다. 학생들과 지도자가 너무 좋아했다”고 했다.

 

정구의 미디어 노출을 늘리는 데도 공을 들였다. 주요 대회 결승전 중계를 정례화하고 방송사 중계가 어려운 경우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경기 영상을 제공하게 했다.

 

하지만 종목의 미래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최근 많은 일반 종목이 그렇듯 정구 역시 저변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 회장은 “전체 실업팀이 23∼24개 정도다. 우리가 타 종목에 비하면 실업팀이 적진 않다. 비올림픽 종목치고는 잘 유지되고 있는 편”이라면서도 “선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저출산에 따른 유소년 인구 감소와 학업 부담이 주원인이다. 정 회장은 “태권도장에 다니듯 스포츠 클럽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운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구를 시작하지만 중학교 진학을 앞두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여학생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러다 보니 여중·여고 선수층이 얇아지고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로도 이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단 기존 선수층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유망주 발굴과 육성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대표팀 세대교체도 중요한 임무다. 한국 정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에서 정식 종목 채택 32년 만에 처음으로 노골드에 그쳤다. 동메달 3개가 전부였다. 정 회장은 “세대교체에 집중해야 한다. 기량이 올라오는 선수들을 잘 발굴해야 한다. 내년부터 새 임기를 시작하는 대표팀 새 사령탑도 잘 선임해야 한다. 실력 있는 선수와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장기적으로는 저변 확대에도 힘써야 한다. 정구는 여전히 아시아에 기반을 둔 종목이다. 5개 대륙 가운데 독자적인 연맹을 둔 곳도 아시아가 유일하다. AG에서도 별도 종목으로 경기는 치러지지만 공식적으로는 테니스의 세부 종목으로 편성돼 있다. 국제무대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저변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

 

다만 세계화의 벽은 높다. 유럽과 미국 모두 라켓 스포츠의 인기가 높다. 피클볼, 빠델 등 집에서도 가볍게 할 수 있는 변형 라켓 스포츠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정구 역시 라켓 스포츠지만, 포지셔닝이 쉽지 않다. 테니스와 피클볼, 빠델 등에 밀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정구연맹 수장인 정 회장이 세계화, 국제적 저변 확대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배경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기존 테니스 선수들이 정구를 익히고 있다. 정 회장은 현지 테니스협회와 협력하면서 종목 보급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국제정구연맹의 재정 지원을 통해 한국 선수단을 파견하고 현지에서 경기 개최도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인근 국가 선수들도 초청해 대회를 열 계획이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이 2024년 9월 안성세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선수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한정구협회 제공
정인선 대한정구협회장이 2024년 9월 안성세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선수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한정구협회 제공

 

◆도하 AG부터 문경 세계선수권까지

 

목표는 명확하다. 2030 도하 AG에서도 정구를 정식 종목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정 회장은 “정식 종목 채택 여부는 AG 조직위원회가 결정한다. 종목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쯤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니스는 단체전을 치르기 어렵지만, 정구는 단체전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경 세계정구선수권대회 성공적 개최도 중요한 과제다. 4년마다 열리는 대회로 한국에서 열리는 건 통산 6번째다. 세계 35개국에서 선수와 임원 등 400여 명이 참가하는 최고 권위 대회다. 특히 이번 대회에 북한 선수단을 초청해 남북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북한은 아이치·나고야 AG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품었다. 사상 첫 은메달 수확이다.

 

정 회장은 “AG 현장에 방문했을 때 때마침 북한 정구 대표팀 총감독이 있었다”며 “세계선수권에 오라고 말을 건네자 그분이 ‘최근에 여자축구팀도 (한국에) 갔는데 못 갈 거 있습네까’라고 했다”고 말했다. 오는 28일부터 중국 후베이성에서 열리는 제5회 세계주니어정구선수권대회가 기회다. 정 회장은 “그 대회에 북한이 온다. 내가 중국 측에다가 북한을 초청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 북한 선수 10여명이 참가한다. 그때 또 만나게 되면 문경 세계선수권에 오라고 언급할 예정”이라고 힘줘 말했다.



김진수 기자 kjlf200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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