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참은 여전히 가장 일찍 일어나 체육관의 불을 켠다. 안주하는 법이 없다. 여전히 승부욕으로 불타오른다. 그 강력한 동기부여로 2라운드 신화를 썼고, 16년 차에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유지 중이다. 프로농구 이관희(삼성)의 마음엔 여전히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다.
가드 이관희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서 2라운드 5순위로 삼성에 입단했다. 2라운드 신화를 쓰며 통산 636경기에 나서 평균 9.3점 2.5리바운드를 기록 중이다. 줄곧 삼성에서 뛰다 LG, DB를 거쳐 지난 시즌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엔 삼성의 암흑기를 같이하며 눈물 흘렸으나, 올 시즌은 ‘몰래카메라’처럼 1위를 질주하는 삼성과 함께 이기는 농구를 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1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끝난 KCC전에서 97-86으로 승리했다. 개막 6연승이다. 2003~2004시즌 삼성이 기록한 개막 최장 연승과 타이다. 무려 23년 만에 다시 세운 기록이다. 이관희는 3점슛 3개 포함 17점을 몰아치며 활약했다.
1위라는 숫자가 어색하다. 이관희는 “나는 안준호 감독님 때부터 있던 선수다. ‘이런 일이 삼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맞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삼성이라는 팀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몰래카메라 찍는 느낌도 든다”며 “팀을 항상 순위표 밑에서 찾았는데, 가장 위에 있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의 가장 큰 변화는 수장이다. 지난 비시즌 우승 경험이 있는 김상식 감독을 선임했다. 이관희는 “삼성에서 가장 무서운 감독님을 꼽자면 김 감독님인 것 같다”며 “벤치에서 내게 소리 지르시는 것만 봐도 무섭다. 은퇴를 앞둔 선수지만, 감독님의 호통을 들을 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연승을 달리는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시기 때문에 선수들도 집중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막 전에는 ‘될 거야’라는 의심 속에서 시작했으나, 연승을 타고부터는 ‘된다’라고 확신을 갖게 된 부분이 지난 시즌과는 달라진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이관희는 올 시즌 등번호를 2번으로 바꿨다. 신인 시절 달던 번호다. 남다른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머릿속으로 마지막을 그리고 있기 때문. 그는 “올 시즌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심정으로 2번을 달았다”며 “행복하게 올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인터뷰실에 들어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양보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내게 분명 한번은 기회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날 이후로 내 출전 시간, 경기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은퇴하게 됐을 때 후회 없이 이 단어를 마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그땐 잘했던 선수보단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관희의 선수 생활엔 우여곡절이 가득하다. 2라운드라는 숫자에 쉼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2024~2025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됐으나, 많은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 은퇴를 마음먹고 주변을 정리하던 찰나, 친정 삼성에서 연락을 받았다. 농구와 삼성에 대한 애정으로 유니폼을 다시 꺼내 입었다. 지난 시즌 반등을 꿈꿨으나, 삼성은 또 10위에 머물며 5시즌 연속 꼴찌라는 오명을 썼다. 비시즌엔 팀과 보수에 대한 이견으로 조정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남자프로농구(KBL) 역대 5번째 선수 승리를 이뤄내며 재계약을 맺었다.
다사다난한 여정에도 농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승리에 대한 갈망이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이관희는 올 시즌 역시 1등으로 체육관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지기 싫은 게 가장 큰 이유”라면서 “남들보다 더 훈련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간을 쏟아야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출전 시간과 경기력은 언젠가 내려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 나이나 몸상태가 스스로 납득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감독님뿐만 아니라 팬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선 연습 없이는 안 된다. 그 지기 싫은 마음 하나로 매일매일 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고참의 솔선수범에 따라 영건들이 하나둘 일찍 체육관에 나서고 있다. 이규태는 “관희 형이 일찍 나오면서 나도 따라 1시간 30분 전에 나와서 슛을 쏜다. 나말고도 다른 선수들도 비슷하게 나와서 훈련한다. 자극받고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은퇴 예고장을 날렸지만, 아직 이관희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선수로서, 선배로서 다음이 기대되는 걸음을 내딛고 있다.
잠실=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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