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 ‘정가네’가 왔네∼”
지난 6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BIFF) 레드카펫에는 게스트 입장에 맞춰 색다른 노래가 울려 퍼졌다. 문화계 전반의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맞춤형 등장곡이었다. 생성형 AI로 만든 곡에는 배우 이름은 물론 출연작과 초청작 제목까지 녹아 있었다. 신나는 멜로디는 덤이었다.
영화 ‘정가네’ 출연진은 예상치 못한 가사에 깜짝 놀라면서도 이내 리듬에 몸을 맡기며 분위기를 띄웠다. 장동건이 등장하자 “니가 가라 하와이∼” “내 부산 왔다 아이가∼”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와 웃음을 안겼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배우 심은경은 “심은경, 당신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어”라는 감성적인 가사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넷플릭스 ‘꿀알바’에 출연한 윤경호는 음악에 맞춰 흥겨운 춤사위를 펼쳤다.
개막식을 총지휘한 민규동 예술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민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특정 게스트를 위한 메시지를 담은 곡을 만들어 환영받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색한 가사에 “귀를 의심하게 된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창의적이고 재밌다. 부국제의 시그니처가 되길 바란다”, “작품 분위기에 맞게 소개받는 기분이라 좋다”, “배우들의 표정이 더 다양하게 담긴다” 등 호평도 적지 않았다.
AI 음악은 레드카펫 밖, 음원차트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악 크리에이터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다. 지난 6월 발매된 이 곡은 9월부터 입소문을 타며 상승세를 그리더니, 인기 아이돌 그룹도 뚫기 어렵다는 멜론 톱100에서 최고 3위(10월 13일)까지 올랐다. 사람이 아닌 AI 보컬을 앞세운 곡이 국내 주요 음원차트에서 이처럼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머무르는 앨범 소개글에서 “본 앨범의 보컬은 Suno AI 기술을 통해 생성되었으며 기획·작사 및 전체 프로듀싱 디렉션은 아티스트 머무르가 직접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에게 AI는 현대적인 악기이자 내 상상을 함께 현실로 옮겨주는 파트너다. 도구는 변해도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며 소신을 드러냈다. 인기 비결은 공감이다.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춘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가사와 멜로디로 역주행에 성공했다.
조선힙합의 ‘마음의 숲’도 비슷한 결의 힐링송이다. 지난 5월 발매된 이 곡은 ‘복잡한 세상에 길을 잃고 헤매어 지친 그대여’, ‘지친 마음 쉬어가요’, ‘아픈 마음 다독여요’ 등의 가사로 리스너들의 공감을 얻으며 멜론 일간차트 99위에 진입했다.
AI 음악은 해외에서도 이미 화두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AI 아티스트 자니아 모네가 빌보드 라디오 차트에 진입한 첫 AI 아티스트로 주목받았다. 시인 텔리샤 존스가 가사를 쓰고 생성형 AI 툴 수노로 만든 ‘How Was I Supposed to Know’로, 빌보드 R&B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에도 올랐다. 곡이 인기를 끌자 자니아 모네를 두고 음반사 간 영입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약 3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성사됐다.
이어 AI 아티스트 브레이킹 러스트의 ‘Walk My Walk’가 빌보드 '컨트리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에 오르며 AI 생성곡 최초로 컨트리 차트 정상을 밟았다. 지난 4월에는 잉가로즈의 ‘Celebrate Me’가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등 주요 국가 아이튠즈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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