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조 모씨는 길가에서 흘러나와 귀에 익은 멜로디가 AI 생성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AI가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는 건 깨닫고 있었지만, 버추얼 아이돌을 넘어 가창의 영역까지 닿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사람이 쓰고, AI가 부른다
국내 대표 음원 플랫폼 최상위권에 안착한 이 곡은 사람이 가사를 쓰고 AI가 부른 노래다. 이처럼 작사와 작곡, 편곡, 가창 등 곡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를 생성형 AI가 맡는 음악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지난해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음악 분야의 생성형 AI 도입률은 15.2%로 집계됐다. 전체 콘텐츠사업체 활용률(32.1%)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2024년 2분기(2.5%)와 비교하면 6배 넘게 뛰었다.
다만 기술의 약진만큼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문화적 제노사이드(cultural genocide)'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다. 미국 가수 겸 배우 베트 미들러는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며 AI 가수 잉가로즈의 ‘Celebrate Me’를 배경음으로 깔았다. 그는 이 곡이 수천 명의 인간 아티스트가 쌓아온 창법과 감정 표현을 보상 없이 가져다 쓴 기계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게시물에는 ‘#문화적제노사이드' 해시태그를 달았다.
국내 반응도 엇갈린다. 머무르의 곡 댓글창에는 남의 창작물을 학습해 짜깁기한 결과물이라는 반감이 쏟아진다. AI 음원 표기를 의무화하거나 AI 전용 차트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현업 뮤지션들의 시선은 좀 더 복합적이다.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은 최근 장재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제 AI 프로그램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누구나 뮤지션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곡을 쓸 때는 기타와 건반을 잡지만, 완성된 곡을 구현하는 단계에서는 AI를 활용한다. 윤종신은 "스타일을 바꿔가며 100개, 200개, 300개도 만들어 준다"며 "인터넷이 나오고 나서의 변화보다 AI로 인한 게 더 센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장재인 역시 "한 줄 입력하면 완곡이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밴드가 모여서 합주를 해서 편곡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해 준다"며 감탄했다. 다만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윤종신은 "나는 잘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지만 의존하다 보면 계속 그것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 차트엔 올랐는데…권리 기준은 백지
국내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AI가 누구의 음악을 학습했는지, 원작자에게 보상이 돌아가는지, AI 활용곡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기준이 없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지난 8월 AI 활용곡의 등록 기준을 내놨지만, 논란 끝에 22일 만에 철회하며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음원 플랫폼의 발매 등록 절차에도 AI 활용 여부를 적는 항목은 없다.
정부는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5일 기업과 창작자,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콘텐츠 AI 협력체계를 꾸렸다. 음악·공연 분과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BS, 갤럭시코퍼레이션 등이 참여해 2028년 신규 연구개발(R&D) 사업 방향을 논의한다. 하지만 정작 AI 활용곡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 마련은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다. AI 음악은 이미 차트 한가운데 들어섰지만, 이를 받아들일 사회적 합의와 제도는 여전히 출발선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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