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경남 함안 무진정. 연못 위에 매달린 3000여개 낙화봉에서 붉은 불씨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따라 흩어진 불꽃이 수면으로 내려앉는다. 하늘로 솟구쳐 터지는 대신 연못을 향해 흩날리는 불꽃이 고즈넉한 밤을 물들였다. 연못을 둘러싼 일본인 관람객들은 천천히 쏟아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추억을 담았다.
지난 15일 일본인 관광객 1500여명이 경남 함안군 무진정 일대에서 열린 ‘2026 함안낙화놀이 재팬 스페셜 데이’를 찾았다.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고 경남도·함안군·경남관광재단이 주관한 행사다. 일본 현지 20여 개 여행사가 구성한 관광상품을 구매한 관광객들이 함안의 낮과 밤을 함께 즐겼다.
현장에는 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정석인 국제관광본부장, 박일웅 경남도 행정부지사, 차석호 함안군수, 권병철 함안군의회 의장, 에비나 쿠니하루 일본여행업협회(JATA) 이사장, 배종천 경남관광재단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주요 참석자들은 낙화봉이 매달린 줄을 당겨 불꽃을 화려하게 만드는 ‘줄치기’에 참여하며 일본 관광객을 환영했다. 풍물패 ‘청음’의 국악 선율이 흩날리는 불꽃과 어우러져 무진정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였다.
◆무진정과 연못이 무대… 낙화놀이 자체가 주인공
함안 낙화놀이는 참나무 숯가루를 한지에 싸서 꼬아 만든 낙화봉을 줄에 매달고 불을 붙이는 전통 불놀이다. 함안낙화놀이보존회 회원들이 행사를 위해 수천 개의 낙화봉을 하나하나 꼬아낸다.
낙화봉의 숯가루가 타들어 가며 흩날리는 불씨와 타닥거리는 소리, 연못에 비치는 빛이 어우러진다. 순간적으로 터지는 폭죽과 달리 불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이 모습 자체에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현장에서 만난 김미화 함안군청 주무관은 함안 낙화놀이의 차별점으로 공간과 행사의 중심성을 꼽았다. 하천변이나 도심에 크레인을 설치해 선보이거나 기존 축제의 야간 부대행사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함안에서는 낙화놀이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것.
일(一)자가 아니라 무진정과 연못을 배경으로 관람객이 둘레에 동그랗게 모여 감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차별점이다. 김 주무관은 이같은 방사형 공간 구성이 함안 낙화놀이의 독보적인 풍경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부터 전해진 함안 낙화놀이는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중단됐다가 1960년대 함안의 괴항마을 청년회가 복원했다. 이후 간헐적으로 열리던 행사는 1985년부터 함안문화원과 함안군의 재정 지원을 받아 매년 이어지고 있다. 2008년에는 경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 지역특화 콘텐츠 부문에 선정됐다.
함안 낙화놀이는 코로나19 시기 방송과 SNS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 주무관은 이전에는 관광축제보다 문화재 공개 시연 성격이 강했고, 관람객도 2000~3000명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후 예능 ‘1박 2일’ 등 방송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방탄소년단(BTS) RM의 ‘들꽃놀이’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낙화놀이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점도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전통을 되살렸던 청년들은 이제 마을의 어르신이 됐다. 김 주무관은 이들이 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주민들과 함께 낙화놀이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관광객의 관심이 커지는 만큼, 불꽃을 준비할 다음 세대를 확보하는 일도 과제로 남아 있다.
◆서울·부산 다음 여행지 찾는 일본인… 2년 새 3배
일본인 대상 특별행사 참가자는 2024년 500명에서 지난해 1000명, 올해 1500명으로 2년 만에 3배 늘었다. 서울과 부산에 익숙한 재방문객에게 지역의 전통문화가 새로운 여행 동기가 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 현지 여행사 한큐교통 관계자는 서울과 부산 등을 이미 다녀온 고객들이 생소한 지역에서 열리는 역사 깊은 축제에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히로시마에서 온는 그는 “이번 행사에 히로시마 출발 고객이 가장 많이 참여했으며, 특히 60대 이상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해마다 상품을 운영하는 일본 내 거점도 늘고 있어 내년에도 행사가 열린다면 참가 규모를 확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여행 일정은 상품마다 다르지만 부산 등으로 입국해 낙화놀이와 주변 관광을 함께 즐기는 방식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박물관, 고려동유적지, 악양생태공원 등을 둘러보고 소머리국밥·연잎밥 등 지역 음식을 더해 구성했다.
여행사별로 진주남강유등축제와 통영 케이블카·동피랑, 산청 동의보감촌, 합천 해인사 등을 연계한 상품도 판매됐다. 낙화놀이를 중심으로 전주·대구·부산 등을 둘러보는 320만원 상당의 프리미엄 상품도 등장했다.
◆불꽃 관람을 지역 소비로… 공사, 체류 늘릴 상품 발굴
한국관광공사는 3년 연속 개최한 일본인 대상 한정판 행사를 일본 시장의 대표 상품으로 정착시킨다는 구상이다. 지역의 자립적인 상품 운영을 지원하고, 관광객의 방문과 소비를 인구감소지역의 경제 활력으로 연결하는 데 목적을 뒀다. 함안군도 지역경제 효과를 살피고 있다. 김 주무관은 이번 행사에서 방문객 설문을 통해 함안 내 지출 금액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석인 한국관광공사 국제관광본부장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관광자원이다. 한국 재방문이 활발한 일본 시장에서 지역 고유 콘텐츠의 상품화는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지방 방문과 지역 체류를 늘리는 고부가가치 상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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