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희의 눈] 전자발찌는 채웠지만, 시민의 안전은 지키지 못했다

그는 범행 한 시간여 전까지 보호관찰관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대형 상업시설로 향했다. 그리고 양손에 흉기를 묶어 고정한 채 시민들을 향해 휘둘렀다. 10명이 공격당했고 8명이 다쳤다. 그중 열아홉 살 여성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의자를 던지고 몸으로 맞서 범인을 제압했다. 범인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이보다 더 기막힌 장면이 있을까. 범죄자는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었고, 시민들은 식당 의자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난 13일 인천 구월동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이다. 범인은 단순한 초범이 아니었다. 과거 세 차례나 흉기로 사람을 공격한 전력이 있었다. 2004년에는 부동산중개사무소 직원을, 2007년과 2015년에는 함께 살았던 여성을 공격했다. 살인미수 등으로 처벌받은 그는 출소 후 전자발찌를 착용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며칠 전인 10월 4일에도 공공장소 흉기 소지 혐의로 입건됐다.

 

위험 신호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경찰은 당시 별도의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 칼로 시위 팻말에 구멍을 뚫었을 뿐 시민을 직접 위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 칼은 위험의 징후로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고, 며칠 뒤 그는 또다시 흉기를 들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범인이 경찰 조사에서 어린이집을 범행 대상으로 고려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자신의 불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뉴스거리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범행 동기라고 한다. 남의 생명을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어떤 사회에서 이런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법무부는 사건 직후 사과하며 전자감독 체계를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범인이 전자발찌 관련 준수사항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바로 이 지점이 가장 섬뜩하다. 규정은 지켜졌는데 시민은 다쳤다. 관리 절차가 작동했는데 범죄는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온 것은 시민의 안전이 아니라 관리 규정 자체였던 것은 아닐까.

 

물론 전자발찌는 만능 장치가 아니다.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뿐 머릿속의 범죄 의도까지 읽어낼 수는 없다. 보호관찰관에게 모든 범죄를 예언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 차례의 흉기 범죄 전력에 새로운 흉기 소지 사건까지 더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래를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드러난 과거와 현재의 위험 신호를 제대로 연결하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전국 전자감독 대상자는 5295명인데 감독 인력은 234명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평균 22명이 넘는 대상자를 관리하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철저한 감독을 외치는 것은 구호에 그치기 쉽다. 인력은 부족하고 기관 간 정보는 충분히 활용되지 않으며, 책임은 사고가 터진 다음에야 거론된다. 그러고는 언제나 똑같은 말이 나온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책은 왜 늘 사람이 다친 뒤에야 등장하는가.

 

그렇다고 범죄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자는 것은 아니다. 형기를 마친 사람에게도 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는 있다. 그러나 반복적인 중대 폭력 전력과 새로운 위험 행동이 확인된 경우까지 똑같이 관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위험도에 따른 관리 기준을 세분화하고, 전자감독 대상자의 새로운 흉기 범죄가 확인되면 경찰과 법무부가 위험성을 다시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강화된 조치에는 법적 근거와 통제 절차도 갖춰야 한다. 인권을 지키는 일과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서로 반대편에 세울 필요는 없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특별히 위험한 장소에 간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으러, 누군가는 영화를 보러, 누군가는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일상이 무너졌다.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앞으로 식당에 앉을 때마다, 쇼핑몰에 들어설 때마다 그날의 공포를 떠올릴지 모른다.

 

우리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는 여전히 서툴다. 사건이 터지면 엄벌을 요구하고,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에 바라는 것은 사건 이후의 강력한 처벌만이 아니다. 애초에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이번 사건에서 범인의 위치를 추적한 것은 국가였다. 하지만 범인의 흉기를 막아낸 것은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의 용기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용기가 국가의 예방 실패를 가려서는 안 된다.

 

범인은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시민들은 의자를 들어야 했다. 다음번에도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의자를 들어야 한다면,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개그맨 겸 방송인 황현희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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