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흥행한 드라마와 예능이 해외 현지화를 통해 글로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완성된 콘텐츠를 해외에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리메이크와 글로벌 공동제작으로 지식재산권(IP)의 생명력을 확장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드라마·예능 현지화 봇물…글로벌 공동제작도 활발
최근 CJ ENM은 드라마 ‘신의 퀴즈’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일본·홍콩 리메이크를 각각 확정했다. 2010년 첫 방송된 메디컬 범죄수사극 ‘신의 퀴즈’는 16년 만에 일본에서 재탄생한다. 배우 마미야 쇼타로가 주연을 맡아 일본의 시대상과 사회문제를 반영한 이야기로 오는 12월4일 공개된다.
2018년 방송된 로맨틱 코미디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필리핀과 태국에 이어 홍콩에서도 현지판으로 제작된다. 현지 인기 그룹 미러의 안슨 로와 콜라의 아이비 소가 주연을 맡았으며 내년 1월 현지 방송을 앞두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현지화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는 일본판 ‘미나미다 미나미 변호사는 천재형’으로 재탄생해 오는 19일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일타 스캔들’(2023)은 태국 버전으로 지난 5월 베일을 벗었고, ‘그녀는 예뻤다’(2015)는 중국·일본·튀르키예에 이어 멕시코에서 지난달부터 방영 중이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은 최근 멕시코와 이탈리아 현지판이 글로벌 비영어 쇼 상위권에 올랐고, 미국과 프랑스 등으로 제작 범위를 넓히고 있다. 티빙 ‘환승연애’의 일본 리메이크작 ‘러브 트랜짓’은 세 시즌 연속 흥행한 데 이어 브라질판 제작까지 확정했다.
주목할 점은 해외 진출 방식의 변화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 해외에서 얼마나 흥행하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IP를 각국의 문화와 정서에 맞게 재창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의 이야기가 현지 창작자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최근에는 리메이크뿐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해외 제작진과 손잡는 공동제작도 활발하다. 현재 디즈니+에서 공개 중인 ‘너에게 다이브’는 한국의 제작사 덱스터픽쳐스와 일본 대형 기획사 아뮤즈,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가 공동으로 제작, 투자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공동제작을 통한 흥행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CJ ENM과 일본 닛폰TV가 공동 제작한 ‘메리 베리 러브’는 지창욱과 이마다 미오를 주연으로 내세워 지난 7일 공개 직후 이틀 만에 플릭스패트롤 기준 디즈니+ TV쇼 월드와이드 2위에 올랐다.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이 현지 제작진과 함께 선보인 일본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 역시 지난해 공개 이후 30일 기준 일본에서 역대 아마존 오리지널 드라마 가운데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했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거뒀다.
◆해외 진출 확대가 반가운 이유
이러한 해외 진출 확대는 K-콘텐츠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콘텐츠 시장은 인구와 소비 규모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제작비는 갈수록 높아지고 흥행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국내 시청자만을 바라보는 사업 구조로는 안정적인 성장과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해외 시장은 이런 한계를 돌파할 기회다. 한 번 제작한 작품을 수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리메이크와 후속 시즌, 공동제작으로 이어진다면 하나의 IP가 장기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콘텐츠의 수명을 늘리고 새로운 투자와 제작 기회를 만들어내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해외 진출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의 흥행 공식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무리한 현지화로 원작의 매력과 정체성을 잃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콘텐츠만의 강점을 지키면서도 현지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K-콘텐츠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여러 차례 확인됐다. K-콘텐츠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지금이야말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할 때다. 일시적인 흥행에 만족하기보다 글로벌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IP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해외 진출의 성과가 국내 제작 현장에도 돌아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해외에서 흥행하더라도 그 수익이 새로운 작품 개발과 창작 인력 양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산업 전체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대형 제작사뿐 아니라 중소 제작사와 신진 창작자들도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야 한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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