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영화 제작진을 증인석에 세우려 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정치가 영화의 운명을 흔든 일은 처음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는 투자와 제작 단계에서 부담이 되기도 하고, 개봉 뒤에는 작품 평가를 둘러싼 진영 논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반대로 정치인들이 직접 극장을 찾아 작품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있다.
◆정치권의 영화 개입 논란
지난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 제작진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영화의 제작 경위와 편집 의도를 확인해야 한다며 허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등의 출석을 요구했다. 같은 당 김석기 의원도 영화가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제작진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창작자를 국회로 불러 작품 내용을 추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노종면 의원은 “보는 사람들 나름의 판단이 있는데 국회로 창작자를 불러내 추궁하는 게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최민희 의원도 “국정감사장이 사상을 검열하는 자리도 아니고,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리도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결국 허 감독의 증인 채택은 무산됐다. 하지만 작품 내용을 이유로 창작자를 국회에 세우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논란을 남겼다.
정치 공방의 여파는 홍보 현장으로도 번졌다. 제작사는 관객과 참석자의 안전 등을 고려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과 야외무대인사를 취소했다. 배우 이민호가 관객과 만날 예정이던 액터스 하우스 행사도 무산됐다.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는 보수단체가 집회를 열기까지 했다.
◆투자부터 관람까지…영화에 영향을 미친 정치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진통을 겪기도 했다. 2012년 개봉한 조근현 감독의 26년이 대표적이다.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학살 책임자를 단죄하려는 이야기를 그렸다. 처음 제작이 추진된 것은 2008년이었다. 그러나 촬영을 앞두고 투자사들이 잇따라 발을 빼면서 제작이 무산됐다.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이후 인터뷰에서 “당시 투자 철회가 연쇄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외압의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압박을 느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영화는 관객이 제작비를 보태는 방식으로 다시 추진돼 2012년 빛을 봤다. 민감한 소재가 제작 자체를 가로막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2013년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은 개봉 후 정치적 해석 논란에 휩싸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송강호의 연기와 법정 장면으로 호평받았지만 관객의 정치 성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렸다. 온라인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는 비판과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맞섰다. 논란 속에서도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정치권의 관심이 늘 공격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7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정치인들의 관람 행렬로 화제를 모았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작품 역시 송강호가 주연을 맡아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5·18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국민의당 지도부는 물론 보수정당인 바른정당 지도부도 극장을 찾았다. 정치권이 영화 관람으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입장을 드러낸 사례다.
정치와 영화가 만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정치적 논쟁은 작품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도 하지만 제작과 상영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운명을 가른 것은 늘 관객이었다. 투자사가 떠난 26년을 다시 일으킨 것은 제작비를 보탠 관객이었고, 정치적 해석이 엇갈린 변호인을 1000만 영화로 만든 것도 관객이었다. 암살자(들) 역시 거센 논란 속에서도 3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정치권이 영화를 치켜세우든 비판하든, 작품에 대한 최종 평가는 국회 증인석이 아니라 극장 객석에서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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