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영화시장 화젯거리는 크게 둘이다. 먼저 역사 왜곡 논란으로 불붙은 정치 사회적 노이즈가 실질적으로 흥행에 도움을 주고 있는 ‘암살자(들)’ 상황, 그리고 인기 캐릭터 기반 미디어 상품 정도로만 여겨졌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콘텐트 자체에 대한 입소문 토대로 예상 밖 흥행에 성공하는 광경. 그런데 둘에 가려진 또 다른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위 두 편과 함께 흥행 삼파전을 구성 중인 ‘타짜’ 프랜차이즈 4편 ‘타짜: 벨제붑의 노래’ 경우다.
개봉 20일차를 맞은 12일 현재까지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누적 관객 수 174만4160명을 기록하고 있다.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250만 관객까진 힘들어도 최종 관객 수 200만 전후는 가능하리란 예상. 그 정도면 VOD 등 2차 시장 수익 포함 손익분기는 넘어설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돌이켜보면 2019년 개봉한 ‘타짜’ 프랜차이즈 3편 ‘타짜: 원 아이드 잭’ 역시 손익분기점 260만 관객엔 못 미치는 최종 관객 수 222만9311명으로 마무리됐지만 그럼에도 4편이 또 제작된 것으로 보아 ‘결국은’ 손익분기를 넘어섰던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 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프랜차이즈 성공담 정도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타짜’란 프랜차이즈가 여러모로 좀 기묘한 형태란 점이다. 일단 감독은 물론 주연배우까지 모두 다르단 점 외에 중심 캐릭터 자체가 각 편마다 모두 다르다. 그나마 2편에선 전편의 빌런 및 사이드 캐릭터인 아귀(김윤석 분)와 고광렬(유해진 분) 정도라도 재등장하지만, 3편부턴 점점 더 1편과 관계가 옅어지더니 4편에 이르러선 아예 독립된 영화라 봐도 좋을 정도. 이른바 ‘세계관’만 공유한단 정도다. 이런 식이면 최소 영화 프랜차이즈 차원에선 소위 ‘짝퉁 속편’이란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타짜’ 프랜차이즈의 ‘사실상 불패’ 신화는 계속되고 있단 것. 곧 ‘타짜’는 일반적 프랜차이즈 흥행 구도로서 이해될 게 아니라, 특정 서브장르를 대변하는 브랜드 표식 정도로 기능해 관객들을 끌어모은다고 봐야 한다. 바로 ‘도박’ 서브장르 그 자체 말이다.
한국 대중문화시장에서 ‘도박’ 서브장르 인기는 역사가 꽤 길고 그 충성도도 탄탄한 편이다. 포착되는 시작점으론 무려 37년 전인 1989년 개봉한 홍콩영화 ‘지존무상’의 현상적 히트가 꼽힌다. 곧바로 아류작 ‘지존계상’과 ‘지존무상 2’ 등도 모두 흥행에 성공하고, 그밖에 ‘도신(한국 개봉 제목 ‘정전자’)’과 ‘도성’ ‘도협’ 등 스핀오프들도 끝없이 쏟아져 한동안 ‘홍콩영화는 황비홍과 도박뿐’이란 말까지 돌았다.
영화 미디어가 잠잠해지자 이번엔 만화계에서 도박 열풍이 일었다. 1990년대 중반 연재를 시작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다. 1998년 국내 정식 발매되자마자 가히 사회현상에 가까운 인기를 끌며 이른바 ‘IMF 세대’를 대변하는 대중문화 콘텐츠 중 하나로 거듭났다. 지금도 해당 세대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대사와 각종 만화 컷 등이 온라인상은 물론 일상에서도 언급될 만큼 대단한 파급력을 증명했다. 사실상 1990년대 청년 멘털리티의 중심에 있었단 평가까지 나오는 정도.
그 인기 바탕으로 ‘한국형 도박 만화’로서 1999년 허영만의 ‘타짜’가 연재를 시작해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2000년엔 노승일의 도박 소설 ‘올인’이 베스트셀러로 거듭났다. ‘올인’은 2003년 SBS 드라마 버전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고, ‘타짜’는 2006년 영화로 등장해 684만7777명 관객을 동원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거기서 또 2년 뒤인 2008년엔 같은 원작 바탕으로 SBS에서 21부작 드라마 ‘타짜’를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영화판 ‘타짜’ 프랜차이즈 전개다. 1편에서 8년 뒤인 2014년 2편 ‘타짜: 신의 손’이 401만5361명을 기록해 ‘고니’ 캐릭터와 그를 맡은 배우 조승우 없이도 성공 가능하단 인식을 심어주며 프랜차이즈에 불을 댕겼다. 프랜차이즈화 기본인 ‘캐릭터’를 버리고도 성공할 수 있단 것, 곧 ‘도박’이란 서브장르 자체가 먹히는 것이란 결론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시장의 이 같은 ‘도박’ 서브장르 인기 해석은 사실 간명하다. 도박 혹은 도박성 그 자체에 대한 대중의 애착과 열기가 문화 콘텐츠로도 옮겨간 현상이란 것. 안 그래도 근래 주식시장 과열을 두고서도 “도박의 민족”이란 식 관전평이 이런저런 온라인 공간은 물론 언론미디어에서까지 언급될 정도니 말 다 했다. 더 파고 들어가면 저 ‘도박의 민족’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할 때마다, 아니 무엇이든 투기성이 담보된 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포착되는 현상이다.
더 크게 보면 동아시아권 자체가 도박에 열광하는 분위기란 해석도 존재한다. 위 언급한 ‘지존무상’이나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만 해도 중화권과 일본에서 등장한 콘텐츠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도 그 흐름은 또 다른 주윤발 주연 프랜차이즈 ‘도성풍운’이나 만화 기반 미디어믹스 ‘라이어 게임’ 등으로 꾸준히 이어진다. 왜 그런지에 대한 해석도 많다. 동아시아 특유의 치열한 경쟁사회 멘털리티와 집단주의 구도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심화, 거기서 도출되는 배금주의 풍조, 그리고 그를 억누를 종교적 도그마나 생활 철학의 부재 등이 꼽히곤 한다. 그러니 각종 규제를 통해 막아놓아도 양성화된 형태로서 일본에선 파칭코가 국민 오락화됐었고, 대만에선 편의점보다 복권 판매소가 더 많단 얘기까지 나온다.
그렇게 동아시아권에선 도박 소재 대중문화 콘텐츠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만큼 일정 수준 이상 호응도 기대할 수 있단 얘기. ‘지존무상’부터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이르는 40년 가까운 흐름의 본질이다. 일각에선 이에 대해 사회의 아픔을 후벼파서 상업화한다거나 사행 심리를 오히려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들이밀곤 하지만, 문화는 결국 대중사회 공감대를 포착해 반영하는 역할로서 기능하게 마련이다. 그 이상의 사회적 책무를 지우기엔 무리다.
나아가 액면 도박 소재 위험성만 지적할 게 아니라 이미 그 멘털리티가 다른 소재들로도 양껏 옮겨간 현실이란 점을 짚어볼 필요도 있다. 예컨대 글로벌 현상이 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만 해도 그 모티브는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취했음을 황동혁 감독 본인이 언급한 바 있다. 이미 사회와 대중 삶 면면을 관통하는 지점이기에 그 본질을 탐구하려는 태도가 곧 문화 역할로서 정방향이란 뜻이다. 그것도 동아시아란 큰 스케일의 공감대 관련한 큰 화두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