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국감서 연일 격돌…“역사 왜곡에 공적자금”vs“창작 자유 막을 권리 없어”

한상준 영화진흥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상준 영화진흥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국회 국정감사로 번졌다. 야당은 영화에 투입된 공적자금과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적절성을 집중 추궁했고, 여당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맞섰다.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암살자(들)’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사건의 배후를 둘러싼 영화적 해석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은 영화의 역사적 사실관계뿐 아니라 청소년 관람 등급과 공공 투자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따져 물었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영등위의 등급분류 결정 의견서를 공개하며 12세 이상 관람가 판정의 근거를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이 공개한 의견서에는 영화가 다루는 한국 현대사의 사회적 갈등을 12세 이상 청소년이 학교 등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평가가 담겼다.

 

정 의원은 “지난 50여 년간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 1974년도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이 단 한 차례도 수록되지 않았다”며 “50년 넘게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친 적도 없는 사건인데 도대체 어떤 학교 지식과 경험을 근거로 수용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영화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과 역사적 사실, 영화 속 가설을 구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청소년들이 영화적 설정을 실제 역사로 오인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학교 단체관람 사례도 거론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전국 중·고등학교 8곳이 해당 영화를 단체관람했으며 3곳은 관람을 앞두고 있고 6곳은 계획을 취소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200명이 넘는 학생이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의원은 영화 홍보 과정에서 배우들이 사용한 표현도 문제 삼았다. 그는 일부 배우가 “아프지만 진실이 이긴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언급하며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진실로 믿어 달라는 식으로 가 버리기 때문에 문제”라고 주장했다.

 

해외 관객이 영화 속 내용을 한국의 실제 역사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우려했다. 정 의원은 콘진원에 게재된 토론토국제영화제 관련 기사를 제시하며 현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몰랐던 한국 역사를 알게 됐다고 반응한 사례를 언급했다.

 

같은 당 윤용근 의원은 영화의 폭력성과 욕설 수위를 문제 삼았다. 극 중 등장하는 고문과 유혈, 음주·흡연, 폭행 등의 장면이 청소년 보호 기준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윤 의원은 김병재 영등위원장에게 “이 정도 폭력성과 욕설 등을 초등학교 5∼6학년이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교육 현장의 언어폭력 기준과 영등위의 청소년 보호 기준이 전혀 다른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비교하며 등급분류 기준의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김병재 영등위원장은 영상물의 공공성과 윤리성, 청소년 보호 등을 고려해 7개 영역을 종합적으로 심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역사적 사건의 사실관계를 판별하는 것은 등급분류 제도의 역할과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역사적인 사건의 진위 여부는 따로 다른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며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과거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가려내기가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위원들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지켜야 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청소년 보호를 위해 신중하게 등급을 분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 과정에 투입된 공적자금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모태펀드 출자금 약 40억원을 포함해 총 78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영화에 투입된 경위와 콘진원의 콘텐츠 가치평가 과정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영화가 역사적 민감성과 명예훼손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콘진원이 종합평가에서 A등급을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족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되는 평가가 작성됐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엉터리 보고서를 믿고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공적 자금 수백억 원이 투자된 데 대해 철저한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도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가상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경우 흥행성만으로 높은 평가등급을 받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살설을 소재로 한 가상의 영화도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는 취지로 질의하며 제작진의 국감 출석을 요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영화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공적자금 투자 절차를 구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조계원 민주당 의원은 해당 투자가 민간 운용사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치권이 작품의 이념적 성향을 이유로 공공 투자의 적절성을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영화를 보고 해석하는 것은 관객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창작의 자유를 갖는다”며 “그 판단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막을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계에서도 ‘창작은 창작이고, 창작이 진실과 완전히 같지 않고,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 역시 특정 작품을 대상으로 정치권이 제재를 요구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노 의원은 “영화는 상상력과 실제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예술”이라며 “특정 영화를 콕 집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는 선을 넘은 창작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영화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상준 영진위원장은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정치권의 공방에 대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복 중인 영화 산업에 혹시 위축이라도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맡겨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역사적 사건의 진위여부는 다른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 시스템으로는 과거 역사적 사실을, 진위를 가려내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정 문체위원장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창작의 자유를 언급하며 영화 내용을 이유로 제작진을 국정감사장에 출석시키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