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팬덤의 소비 영역이 넓어지면서 산업의 외형도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티스트를 향한 팬들의 애정과 충성도를 반복적인 구매로 연결하는 판매 방식이 확산하면서 과소비를 부추기고 환경 부담까지 키운다는 지적이다.
◆포토카드·팬사인회가 부르는 ‘중복 구매’
대표적인 것이 포토카드를 비롯한 랜덤형 상품이다. 같은 앨범이라도 버전별로 다른 사진과 구성품을 넣거나 여러 종류의 포토카드 가운데 일부를 무작위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거나 모든 종류를 모으려는 팬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게 된다.
팬사인회나 영상통화 이벤트도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요소로 꼽힌다. 앨범 구매량에 비례해 응모 기회를 주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수십, 수백 장을 구매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음악을 듣기 위해 한 장의 음반을 사던 전통적인 소비 방식과 달리 앨범 자체보다 포토카드나 이벤트 참여권 등 부가적인 혜택이 구매의 주요 목적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판매된 앨범 가운데 상당수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필요한 포토카드나 응모권만 확보한 뒤 음반이 그대로 버려지는 일도 발생한다. 판매량은 늘어나지만 실제 음악 감상을 위한 음반 수요와는 괴리가 생기는 구조다.
K-팝 음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환경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음반기획사가 앨범·포장재·굿즈 제작 등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2019년 573.3톤에서 2023년 2264.8톤까지 4년 만에 약 4배 증가했다. CD를 비롯해 앨범 패키지와 각종 굿즈에 플라스틱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데다 짧은 기간 대량 생산되는 상품도 많다. K-팝 산업의 가파른 성장과 함께 환경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팬덤 충성도 상업화 우려
소비 경쟁이 팬덤 내부로 옮겨붙는 현상도 또 다른 문제다. 과거에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과 굿즈를 구매하는 것은 대표적인 팬 활동이었지만 최근에는 ‘얼마나 많이 샀느냐’가 팬심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겨났다.
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 얼마나 팔았는지를 측정하는 초동 판매량이 아티스트의 팬덤 규모와 성적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 잡으면서 팬덤 사이에서는 초동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한 공동구매와 반복 구매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록 자체가 팬덤의 성과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음반 구매가 아티스트의 기록 경쟁에 힘을 보태는 팬 활동으로 확장된 셈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팬덤의 충성도를 지나치게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팬들의 수집 욕구와 경쟁 심리를 수익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K-팝의 주요 소비층에 청소년과 젊은 세대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팬덤의 소비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앨범과 굿즈를 모으는 것은 팬들에게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팬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다. 음반 판매뿐 아니라 공연과 굿즈, 플랫폼 등으로 수익원이 다양해진 것은 K-팝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CD 없애고, 플라스틱 줄이고…반복 구매 근절이 핵심
결국 팬덤 소비를 억제하기보다 불필요한 반복 구매를 줄일 수 있도록 판매 구조를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음반 판매량이 여전히 중요한 성과 지표인 상황에서 한 회사가 먼저 기존 판매 방식을 크게 바꾸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도 조금씩 변화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실제로 임영웅은 지난해 정규 2집을 발매하면서 실물 CD를 아예 제작하지 않았다. CD를 실질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워진 환경과 팬들의 구매 부담,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대신 소장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 화보와 앨범 크레딧, 메시지 등을 담은 앨범북을 제작했으며 이마저도 음반 판매량에는 집계되지 않도록 했다.
K-팝 최대 기획사 하이브가 지난 6월 발간한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브는 QR코드로 음악과 포토 콘텐츠를 이용하는 위버스 앨범을 통해 기존 피지컬 앨범보다 종이와 플라스틱 등 자원 사용을 줄이고 있다. 포장 비닐에는 생분해성 OPP 소재를 적용하고 플라스틱이던 QR카드도 종이로 바꿨다. 2023년부터 DVD와 블루레이 등 영상출판물 역시 실물 디스크 대신 QR코드나 인증번호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디지털 코드 기반 상품으로 전환하고 있다.
다만 소재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친환경 소재로 만든 앨범이라도 수십 장씩 구매하도록 유도한다면 과잉 생산과 폐기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결국 반복 구매를 전제로 한 판매 방식 자체를 손보는 것이 핵심이다. 원하는 포토카드를 선택해 구매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음반을 추가로 사지 않아도 팬사인회 등에 참여할 수 있는 별도의 응모 방식을 마련하는 식이다. 실물 음반과 디지털 앨범을 다양하게 구성해 팬들이 자신의 소비 목적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