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더 믿게 됐습니다.”
숨이 멎을 듯한 팽팽한 긴장감, 승부는 단 한 발의 방아쇠에서 갈렸다. 대회 내내 유독 메달 운이 따르지 않아 애를 태웠던 한국 사격. 마지막 날 이건혁(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휩쓸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 2관왕에 올랐다. 3년 전 ‘노골드’의 아쉬움을 털어낸 화려한 피날레였다.
이건혁은 1일 일본 아이치현 종합 사격장서 끝난 대회 남자 25m 속사권총 결선서 1위를 차지했다. 이날 오전 윤서영(KB국민은행), 송종호(IBK기업은행)와 합작한 단체전 금메달에 이은 두 번째 금빛 낭보다. 개인·단체전 석권은 2014 인천 대회 김준홍 이후 12년 만이다.
속사권총 결선은 4초 이내에 5개 표적에 1발씩 사격해 9.7점 이상을 맞추면 1점을 쌓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발부터는 5발마다 6위부터 1명씩 차례로 탈락했다. B사대에서 결선을 치른 이건혁은 21~25발에서 퍼펙트를 기록해 21점을 쌓아 단독 선두로 도약했다.
이어진 시리즈에선 4점을 쌓아 2위와 격차를 2점 차로 벌렸다. 하지만 쑤롄보판(중국)이 뒷심을 발휘했다. 32점 동점으로 슛오프에 돌입했다. 1차는 나란히 4발을 맞췄다. 2차 슛오프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쑤롄보판은 3점에 그쳤고, 이건혁이 퍼펙트를 쏴 우승을 확정 지었다.
우연한 만남이 인연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사격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10m 공기권총에서 25m 속사권총으로 종목을 바꿨다. 체력 훈련 도중 쇄골 부상을 당했지만,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고 다시 사선에 복귀했다. 2022 국제사격연맹(ISSF) 카이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우승으로 명성을 떨쳤다.
커리어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2022 항저우 대회 단체전 은메달, 2023 창원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 2023 바쿠 세계선수권 단체전 동메달, 2025 카이로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 등을 수상했다. 지난 4월 AG 대표 선발전에선 596점을 쏴 비공인 세계신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준 이들은 가족이었다. 아내는 2024 파리올림픽 여자 10m 공기권총서 은메달을 따며 큰 사랑을 받은 김예지(임실군청)다.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출전을 끝으로 권총을 내려놓고 자녀 양육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결승을 앞두고도 강력한 채찍질을 건넸다. 이건혁은 “아내가 경기 전에 금메달을 못 따면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웃었다.
아시아 최정상에 선 그에게 한층 더 성숙해진 품격이 느껴졌다. 이건혁은 “사실 항저우 대회 때는 멘털적으로 약했다. 이제는 막내도 아니고, 가족과 아기가 생겼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더 강해진 것 같다”며 “지금 이 상황이 정말 기쁘다. 앞으로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다. (이번 2관왕으로) 나 자신을 더 믿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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