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조부모의 고향서 뛰겠다며 한국행을 택했다. 재일교포 4세로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혼자 한국에 온 건 처음인 터라 마음고생이 많았다. 하루하루 성장하면서도 스스로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했다. 가족이 그리운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루겠다며 나선 여정,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응원에 기대 눈물을 닦고 버텨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본, 홍유순(신한은행)은 어머니 앞에서 당당히 포디움 정상에 섰다.
꿈의 시작은 어머니였다. 홍유순의 어머니 심리미 씨는 어릴 적부터 농구를 즐겼다. 하지만 심리미 씨가 학창 시절을 보내던 당시, 조선학교는 일본 전국대회 등에 참가할 수 없었다. 프로 선수의 꿈은 언감생심이었다. 대신 동호회를 택했다. 지금도 오사카 재일교포 어머니들이 모여 ‘엄마즈’라는 이름으로 농구를 즐기고 있다. 홍유순은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체육관을 드나들며 농구공을 만졌다. 자연스럽게 농구와 가까워졌고,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코리안 드림’의 시작은 2024년도다. 일본 오사카산업대를 중퇴하고 한국 여자프로농구(WKBL)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전체 1순위 지명에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순조롭게 안착한 홍유순은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더 특별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에서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이다. 출전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코트를 밟을 때마다 제 몫을 해냈다.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은 지난 26일 일본을 꺾고 12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관중석 한 편으로 달려갔다. 어머니와 이모,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이른바 ‘홍유순 응원단’은 경기 내내 한목소리로 힘을 보탰다. 홍유순은 반짝이는 금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렸다. 심리미 씨는 “정말 정말 축하한다. 유순이는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다. 유순이가 이렇게까지 농구를 열심히 해줘서 기쁘다. 사실 한국 대표팀에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근데 중국도 이기고, 일본까지 이겨서 우승했다”며 “저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라고 미소 지었다.
버거웠던 한국 생활의 기억은 금메달 앞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홍유순은 “사실 처음 한국에서 뛸 때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엄마와 연락하며 버텼다”며 “그때는 이런 영광을 상상도 못 했다. 내가 AG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는데, 금메달까지 따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꿈을 이어받은 홍유순에겐 또 다른 이정표가 있었다. 먼저 한국을 선택한 재일동포 유도 허미미(경북체육회)다. 그는 1일부터 경기에 나서 금빛 도전을 이어간다. 홍유순은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 있을 때부터 허미미 언니는 유명했다. 나의 롤 모델”이라며 “언니도 꼭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 응원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나고야=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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