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진한 핏줄’
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 경기장을 누비던 부모를 보고 자란 2세들이 이제는 조국의 영웅이 됐다. 어느덧 훌쩍 자라 거센 승부의 세계 속에서 기량을 증명해 냈다. 금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 관중석과 경기장을 채운 환호는 한 가족의 영광을 넘어 국민들의 커다란 기쁨이 되고 있다.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의 금메달을 이끈 이현중이 ‘모자(母子) 금메달리스트’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번 대회 6경기에서 평균 24점, 9.7리바운드, 2.3스틸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3점슛 5개를 포함해 27점을 터뜨리며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현중의 어머니 역시 한국 여자 농구의 레전드다. 성정아 대한농구협회 이사 현역 시절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며 1984 LA 올림픽 은메달, 1990 베이징 AG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84㎝의 신장으로 뛰어난 운동 능력, 리바운드 위치 선정, 파워, 패싱 능력을 선보이며 국제무대의 장신 센터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몸을 내던지는 허슬 플레이, 날카로운 돌파, 지치지 않은 기동력으로 ‘흑표범’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현재 이현중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에 이현중의 아버지 역시 하승진을 길러낸 이윤환 삼일고 농구부 감독이다.
지난 21일 입국 길에 오른 이현중은 어머니를 향해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는 “어머니가 많은 말씀은 안 하는 편이다. 늘 평소대로 하라고 냉철하게 이야기해 준다”며 “어머니 같은 분이 가족이란 게 나를 더 대단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어머니의 존재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밝혔다.
생애 첫 AG를 치른 한국농구연맹(KBL) 최고 슈터 유기상(LG) 역시 금메달 가문에 이름을 올렸다. 유기상의 부모님은 ‘정구 금메달 커플’로 잘 알려졌다. 아버지 유영동 NH농협은행 소프트테니스 감독은 AG에서만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머니 박영아 씨 역시 1994 히로시마 대회 금메달리스트다.
유기상은 역시 이번 대회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정확한 슛은 물론, 적재적소에 골밑 침투까지 하며 공격에서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비록 결승전은 출전하지 못했지만, 벤치에서 그 누구보다 뜨겁게 응원했다. 아들의 금메달에 유 감독은 “내 자식이지만 정말 대단하고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유기상은 “가족으로서 멋진 업적을 이루고 싶어 간절했다”며 “결승전을 앞두고 꼭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금메달을 따고) 아버지랑 포옹하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털어놨다.
금메달 사냥에 나서는 선수도 있다. 바로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골키퍼 김민승(파주FC)이다. 그의 아버지는 ‘정구 레전드’ 김경한 대구시체육회 감독이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1998 방콕 대회 정구 남자 단체전, 2022 부산 대회 남자 단식과 단체전 2관왕을 차지했다. 조기 8강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이 4연패를 달성할 경우 또 한 쌍의 ‘부자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한다.
이미 ‘부녀 금메달리스트’ 타이틀을 얻은 여홍철 대한체조협회 전무이사와 한국 체조대표팀 주장 여서정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바로 ‘부녀 최초 AG 2회 금메달’이다. 여서정은 오는 24일 여자 도마 결선을 치른다. 지난 6월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묵묵한 기다림이다. 여 전무는 “선수 생활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내가 먼저 조언하면 자칫 간섭이 될 수 있겠더라. 딸이 먼저 다가와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며 “서정이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다치지 않고 웃으면서 경기를 마치길 바랄 뿐”이라고 응원했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