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1번’ 김도영 앞에 숨은 테이블세터가 있다. 타순표 맨 아래의 8번 박재현과 9번 김지찬이다. 숫자로는 한참 뒤지만, 타순이 돌면 바로 앞이다. 대표팀 최고 타자에게 한 타석이라도 더 주면서 주자를 불러들일 기회까지 늘리려는 류지현호의 계산이다.
한국은 21일 대만과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 조별리그 첫 경기서 이 조합을 가동했다. 박재현과 김지찬은 각각 소속팀인 KIA와 삼성에서 리드오프로 맹활약 중인 자원이다.
둘이 살아나가면 다음 순서인 김도영은 사실상 3번 타자처럼 득점 기회를 맞을 수 있다. 하위 타선을 단순히 상위 타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아니라, 김도영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자리로 활용한 셈이다.
이 밑바탕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강한 1번’의 논리가 깔려 있다. 타순이 빠를수록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설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출루는 물론 장타 능력까지 겸비한 타자에게 그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발 빠른 작전형 타자를 앞세우고 장타자를 3∼5번에 두는 익숙한 역할 분담과는 다르다. 생산력 높은 타자를 뒤에 아껴두기보다 공격의 출발점으로서 활용한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김도영을 타선 맨 앞에 세웠다.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 베네수엘라의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도 같은 자리를 맡았다. 실제로 김도영은 당시 대표팀서 가장 많은 22타석을 소화했을 정도다. 이번에는 기회를 더 많이 얻는 데서 나아가, 누구와 이어질 때 위력이 커질지까지 살핀 타순 배치가 눈길을 끈다.
물론 김도영 한 명의 힘만으로 가능한 구상은 아니다. 송재우 TVING 해설위원은 WBC 당시 “대표팀은 뒤에 장타력 있는 타자들이 많기 때문에 김도영을 1번에 두는 구성이 가능했다”고 짚은 바 있다.
이번 대만전에서도 2∼4번에 문현빈, 노시환, 문보경이 포진했다. 김도영 앞에 주자가 없더라도 그가 출루하면 이들이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득점을 마무리할 동료들이 있기에 김도영에게 공격의 시작도 맡길 수 있는 셈이다.
첫 실전에선 공교롭게도 김도영이 네 차례 모두 이닝을 여는 선두타자로 섰다. 1회와 3회, 6회, 8회까지 매번 주자가 없었다. 박재현과 김지찬은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면서 기대했던 8-9-1번의 득점 연결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 경기로 이 배치의 성패를 가를 단계는 아니다. 김도영은 8회 2루타를 때린 뒤 홈을 밟으며 득점 주자로 힘을 보탰다.
김도영은 한 가지 역할에 얽매이기보다 그날 팀에 필요한 몫을 해내겠다는 자세다. 그는 경기 뒤 “득점 주자가 되는 날이 있고, 타점을 내야 되는 날이 있다. 오늘은 득점 주자가 돼야 할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아직 경기가 많이 남은 만큼 앞으로는 타점으로도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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