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그쪽으로 시키더라고요.”
대한민국 농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이현중 선수가 일본 복귀가 아닌 포틀랜드행을 선택하며 한 말이다. 그는 기회를 놓쳤을 때 남을 후회를 선택의 이유로 들었다. 보장된 고액의 연봉이 아닌, 불확실한 비보장 계약을 선택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현중 선수의 선택은 대중을 더욱 놀라게 했다.
목표를 말하는 선수는 많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프로에 가고 싶다’, ‘우승하고 싶다’, ‘해외에 가고 싶다’ 등. 하지만 목표의 높이만큼이나 더 중요하게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왜 그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
같은 목표를 꿈꾸더라도 그 이유는 모두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어릴 적부터 꿈꿨던 무대이기 때문이고, 누군가는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도전하기도 한다. 또는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대중의 평가, 외적 보상 때문에 그 목표를 붙들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목표는 같아도, 그 목표까지 닿도록 하는 힘은 다르다는 것이다.
자기결정성 이론에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동기의 질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느낄 때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른 선택과, 외부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은 같은 행동이라도 심리적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현중 선수의 ‘가슴이 시켰다’라는 표현은 흥미롭다. NBA에 반드시 가야한다는 이유보다는, 도전하지 않았을 때 더 후회할 것 같아 선택했다는 점 말이다. 이 선택의 결과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현중 선수 스스로 선택했고, 그 이유가 그의 마음 내부에 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선수 생활 동안 매 순간 좋은 결과만 얻을 순 없다. 계약 규모가 기대했던 것보다 적을 수도 있고, 출전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으며, 원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이때 선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목표 그 자체보다는, 그 목표를 선택했던 이유다. 따라서 선수들이 목표를 정할 땐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에서 끝내서는 안 된다. 그 목표가 ‘나에게 왜 중요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목표까지 다다르는 긴 훈련과 인내에는 스스로 납득할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꿈이라고 해서 매일이 즐거울 순 없다. 잘 풀리지 않는 날엔 자신이 한 선택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처음의 이유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일인지’, ‘지금 감수하는 어려움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현중 선수의 발언은 적어도 이번 선택을 설명할 때 그가 자신의 바람을 중요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에서도 사람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 지향성과 과제 지향성으로 설명한다. 자아 지향적인 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한다. 다른 선수보다 더 많은 득점을 했는가, 라이벌보다 더 좋은 팀에 갔는가, 드래프트에서 몇 순위로 뽑혔는가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반면, 과제 지향적인 선수는 배움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어제보다 더 좋아진 부분이 있는지, 준비했던 동작이나 기술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능력을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로 판단한다.
스포츠에서 비교는 불가피하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기에,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가 자신의 능력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이 선택한 꿈 앞에서도 작아지는 날이 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다른 선수가 더 잘한다. 지난해보다 실력이 나아졌는데 원하던 기회는 오지 않는다. 특히 NBA라는 무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전쟁터다. 내가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존재할 수 있고, 구단의 결정이나 상황에 따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론 마음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이때부턴 자신의 하루를 무엇으로 평가하는지가 중요해진다.
가령 한 선수가 슈팅 훈련에서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옆에서 훈련한 선수의 기록은 더 좋다. 이 선수에게 그 훈련은 어떤 날로 남을까. 자신의 슛이 좋아진 날일 수도 있고, 또다시 남보다 못한 모습을 확인한 날일 수도 있다. 같은 기록 앞에서도 무엇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더 높은 무대를 향하는 선수에게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사실과 오늘도 누군가에게 뒤처졌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비교만으로 자신을 평가하면, 성장한 날에도 스스로에게 줄 점수가 없어진다. 아직 남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발전까지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과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한 선수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두 지향성은 함께 높게 나타날 수도 있다. 다만 긴 도전을 준비하는 선수에겐 과제 지향성의 비중이 조금 더 단단하게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경쟁에서 느끼는 유능감이 흔들릴 때도, 자신이 익힌 것과 나아진 부분을 알아볼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현중 선수가 어떤 유니폼을 입게 될지는 알 수 없다. NBA 코트를 밟을 수도 있고, 다른 무대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들은 노력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표만으로 선수의 도전을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환경적 요인이나 상황에 따라 당장의 목표는 계속 달라진다. 자기결정성은 도전을 시작하는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발전을 확인하고, 필요한 방향으로 계획을 고치는 과정에서도 선수는 계속 선택의 주체로 남아 있어야 한다.
어떤 시기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또 어떤 시기에는 출전 시간을 확보하거나 자신의 강점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멀리 있는 목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과제를 선택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긴 도전을 시작하는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먼 목표만 바라보기보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과제를 선택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더욱 필요할 수 있다.
이현중 선수가 NBA 코트에 설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그는 자신이 왜 그 길을 가고 싶은지는 명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긴 도전을 계속해 나갈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글=권혁주 박사, 정리=이혜진 기자
권혁주 박사는...
△멘탈 퍼포먼스 멘탈 디렉터 △스포츠심리학 박사 △스포이즘 운영지원팀 팀장 △인하대학교 강사 △국제사이버대학교 비전임교원 △한국스포츠학회 심사위원 △인천광역시 스포츠과학센터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2026) △충남스포츠과학센터 스포츠과학교실 특강(2025) △인천체육고등학교 심리트레이닝(2024-2026)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인천광역시청 여자핸드볼선수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원종고등학교 사격팀 심리기술훈련 지원(2022-2024) △SOL FC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내동중학교 탁구팀 심리기술훈련 지원(2021) △전국 소년체육대회·전국체육대회 심리지원(2018-2022) △전라남도교육청 스포츠심리상담사(2018-2020) △전남체육중·고등학교 멘탈트레이너(2017) △저서 ‘운동화와 함께 뛰는 긍정의 멘탈트레이닝 II(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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