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토크] “어디서 많이 봤는데?”…'경주기행' 이연이 매번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이유

“어디서 많이 봤는데?”

 

화면 속 배우 이연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소년심판(2022)의 13세 소년범부터 약한영웅 Class 1(2022)의 가출 청소년, 절해고도(2023)의 스님, 길복순(2023)의 킬러까지, 작품마다 새 얼굴로 변신했다. 덕분에 성별과 나이, 직업을 뛰어넘는 연기로 자신의 이름보다 캐릭터를 먼저 각인시켰다.

 

이번에는 영화 경주기행의 전직 프로레슬러 동주가 됐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을 기다린 네 모녀가 복수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가족 복수극이다. 오디세이와 옵세션 등 외화의 공세 속에서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이어가고 있다.

 

동주는 집안의 기둥인 첫째 장주(공효진), 똑 부러진 둘째 영주(박소담), 사랑스러운 막내 사이에서 어떻게든 관심받으려는 셋째 딸이다.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이지만 거친 행동 뒤에는 막내를 잃은 죄책감과 가족을 향한 사랑이 숨어 있다. 

 

◆“동주는 상처를 레슬링으로 회피했다”

 

15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이연은 김미조 감독의 인연을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코로나19 시기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다. 이후 경주기행 출연을 제안받았지만 당시에는 일정 문제로 한 차례 고사했다. 김 감독은 동주를 연기해야 하는 이유를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다시 제안했다. 기존 일정이 미뤄지면서 출연도 성사됐다.

 

이연은 “시나리오가 좋았고 감독님의 적극성도 감사하더라. 출연을 결정할 때는 이정은 선배와 언니들의 캐스팅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며 “원래 하기로 했던 작품이 미뤄지면서 일정도 가능해졌다. 이 작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동주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센 캐릭터였다. 이연은 “편집됐지만 첫 등장부터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육두문자를 하는 친구였다. 감독님은 이 거친 친구를 내가 연기해서 조금 더 귀엽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강한 인상에 가려진 다른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외동딸이기에 형제자매가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주에게 다가갔다. 가족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막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거친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해석했다고. 이연은 “동주는 가족들도 자신을 탓한다고 생각해 8년 동안 집에 머물지 못했을 것”이라며 “죄책감을 꺼내기보다 자기 탓이 아닌 척하고, 더 씩씩하게 앞장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가 변한 모습도 동주가 가장 늦게 봤을 것이다. 자신의 충격을 뒤늦게 마주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상처를 레슬링으로 회피했기 때문에 돌아온 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몸을 쓰는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주를 이해할수록 막내 경주를 향한 감정도 깊어졌다. 이연은 “경주를 생각하면 아주 잘 익은 민들레 한 송이가 내 안에 있는 느낌”이라며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마음속 감정 버튼이 눌린다. 진심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10㎏ 증량에 고강도 훈련…직접 완성한 액션

 

전직 프로레슬러의 체형을 만들기 위해 체중을 약 10㎏ 늘렸다. 두 달 동안 액션스쿨에 다니며 기본기를 다졌고 무술감독과 함께 프로레슬링 기술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일본에서 실제 프로레슬링 경기를 관람했고 동주에게 어울리는 강렬한 샤기컷도 현지에서 완성했다.

 

레슬링 기술을 거는 장면도 대부분 직접 소화했다. 이연은 “액션에서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감정과 에너지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며 “카메라에 감정과 액션의 균형이 온전히 담기길 바라서 직접 하겠다고 했다. 기술을 익히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후반부에는 동주의 프로레슬링 장면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묻자 “의외로 초반에 봉고차에서 튀어나와 달려간 뒤 스피어를 걸고 다시 트렁크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날 정말 더웠고 뙤약볕 아래에서 굉장히 많이 뛰었다. 시멘트 바닥에서 점프해 봉고차 트렁크로 들어가니 몸도 많이 아프더라”며 “가장 무서웠던 것은 허리케인 기술이었다. 타이어를 밟고 올라가 상대를 넘기는데 내 머리가 땅에 닿을까 봐 무서웠다. 머리가 닿지 않으려면 정말 높이 뛰어야 했다”고 돌아봤다.

 

더불어 “마지막에 엄마와 동주, 남자(변요한)가 한데 엉켜 싸우는 장면은 특히 잘 나온 것 같다. 모든 동작이 짜여 있었는데 무술감독님이 막싸움처럼 보이도록 각각의 인물에게 장애를 줬다. 동주는 칼에 찔려 기술을 제대로 쓸 수 없고, 상대는 팔이 부러졌으며, 엄마 역시 교통사고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셋 모두 핸디캡을 갖고 있으니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부끄럽지 않은 배우 될 것”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연이 건넨 말 한 마디에는 연기에 대한 깊은 진심과 애정이 짙게 묻어났다. 섣부른 말 대신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태도에서, 스크린 밖 인간 이연 역시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장해 왔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독립영화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이연은 이번 경주기행을 통해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한 단계 크게 성장했음을 털어놓았다.

 

이연은 “지나온 필모그래피를 돌이켜보면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을 해본 적이 없다. 작품 하나를 찍으면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계절을 모른 채 서른이 넘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라며 “선배들의 역사를 가까이서 듣고 배우면서 저 스스로도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좋은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면서 성장하고 싶다. 또 관객들에게 묻어둔 기억을 꺼내볼 수 있게 만드는 신뢰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주기행은 상처를 지닌 모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통을 마주하고 끝내 서로를 품어안는 깊은 유대감의 영화”라며 “극장에서 오롯이 이 모녀의 뜨거운 에너지를 느끼시고, 관객분들의 마음속에도 커다란 울림이 남기를 바란다”라고 당부를 덧붙였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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