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뒤에도 외국인 투수 웨스 벤자민(두산)은 쉽게 더그아웃을 떠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빠져나간 홈 더그아웃에 홀로 남아 여기저기 놓인 물병을 하나씩 주워 정리했다. 두산 합류 후 이어오고 있는 자신만의 루틴이다. 23일 만의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에도 변함없었다.
벤자민은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키움과의 2026 신한 SOL KBO리그 정규리그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4이닝 2피안타 1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5-0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왼쪽 견갑하근 미세 손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뒤 지난달 18일 NC전 이후 첫 1군 등판이었다.
출발부터 힘이 넘쳤다. 직구(10구)는 최고 시속 149㎞, 평균 146㎞를 찍었다. 여기에 슬라이더(17구)를 가장 많이 던진 가운데 커브(12구), 싱커(9구), 체인지업(6구), 스위퍼(5구)까지 고르게 섞어 키움 타선을 흔들었다.
특히 마지막이 강렬했다. 4회 선두타자 추재현을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낸 뒤 맷 데이비슨과 케스턴 히우라, 박찬혁을 내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당초 복귀전 투구 수는 50개 안팎으로 잡혀 있었지만 벤자민은 59구로 4회를 끝까지 매듭지었다.
그는 “오늘은 부상 복귀 이후 컨디션을 천천히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양의지의 리드대로 던진 덕분에 7개의 삼진을 잡을 수 있었다”며 “사전에 50구 정도를 예상했지만 4회는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믿고 맡겨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컨디션도 좋다. 다음 등판도 잘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속이 편치 않았을 터. 실제로 벤자민은 “부상으로 빠져 있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며 “온전히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신 트레이닝 파트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선제 홈런을 포함해 3타점을 책임진 유니오 세베리노를 향해서도 “대형 홈런 덕분에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묵묵히 열심히 준비한 걸 알기에 자랑스럽다”며 공을 돌렸다.
시작은 ‘대체 카드’였다. 벤자민은 크리스 플렉센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KT에서 뛰어 KBO리그 경험은 풍부했지만 시즌 중 급하게 합류한 만큼 처음에는 임시 전력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호투를 이어가며 정식 계약까지 따냈고, 이날까지 20경기서 110⅔이닝을 책임지며 5승7패 평균자책점 2.44를 써냈다.
김원형 두산 감독이 더 높게 평가한 건 기록 너머의 태도다. 김 감독은 시즌 도중 “더그아웃에서 봐도 선수의 마음가짐이 보인다. 최선을 다해 팀을 위해 경기하겠다는 자세가 느껴진다”고 칭찬한 바 있다.
홈 경기서 등판을 마친 뒤 홀로 물병을 정리하는 모습도 이제 곰 군단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구장 직원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마음이자, 스스로는 좋은 기운을 이어가기 위해 지키는 소소한 루틴이기도 하다. 거창한 행동은 아니지만, 자신이 머문 자리를 직접 챙기는 모습에는 팀을 대하는 벤자민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복귀 시점도 절묘하다. 두산은 곽빈과 최민석이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약 2주간 선발진을 비운다. 벤자민과 잭 로그, 최승용 등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 때에 ‘복덩이’가 건강하게 돌아왔다.
임시로 빈자리를 채우러 왔던 투수가 어느새 두산이 가장 필요한 순간 믿고 바라보는 선발투수가 된 셈이다. 벤자민은 마지막으로 “팬분들이 정말 보고 싶었다. 항상 감사드린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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