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비하인드] ‘태권 꿈나무’ 손잡고 코트로… 무주 GP의 색다른 선수 입장

무주 설천초 2학년 조수빈 양(사진 왼쪽)과 태권도 배준서. 사진=세계태권도연맹·태권도진흥재단 공동 제공
무주 설천초 2학년 조수빈 양(사진 왼쪽)과 태권도 배준서. 사진=세계태권도연맹·태권도진흥재단 공동 제공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무주 태권도원에서는 이 익숙한 문구가 경기 시작 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세계태권도 그랑프리(GP) 시리즈 출전 선수들이 도복을 입은 어린이들과 손을 맞잡고 코트로 향하자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멀리서만 바라보던 국가대표 무대를 직접 밟고, 세계 정상급 선수와 같은 길을 걷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터. 몇 걸음 남짓한 짧은 동행이었지만, 언젠가 자신도 선수로 이 길에 다시 서고 싶다는 꿈을 한층 또렷하게 품기에는 충분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주최하고 태권도진흥재단과 대한태권도협회가 공동 주관한 이번 대회에서는 8~10세 어린이 12명이 ‘플레이어 에스코트’로 나섰다. 재단 임직원 자녀와 무주군 관내 태권도 수련생을 각각 6명씩 선발해, 파라대회를 포함한 7일까지의 나흘 일정 동안 매일 3명씩 선수들의 입·출장을 함께하도록 했다.

 

사진=태권도진흥재단 제공
사진=태권도진흥재단 제공

 

선수와 코치만 나란히 들어섰던 지난해 GP 챌린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GP 시리즈는 선수 곁에 어린이들을 세우며 경기 전부터 한층 친근하고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무주 설천초 2학년 조수빈 양도 이번 대회 ‘플레이어 에스코트’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대회 첫날 배준서와 서은수의 손을 잡고 입장로를 걸었다. 태권도를 배운 지 수개월에 불과하지만 일찌감치 국가대표를 꿈꿔온 수빈 양에게 이번 경험은 목표를 한층 또렷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선수들과 같은 무대를 밟은 뒤에는 설렘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국가대표가 돼 이곳 태권도원에서 경기하고 싶다”며 한층 커진 꿈을 드러냈다. 수빈 양은 에스코트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학생 선수 대회 출전을 위해 길을 나섰다. “큰 도파민을 그대로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미소 지었다.

 

이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아버지 조재동 태권도진흥재단 대리다. 조 대리 역시 선수 생활을 경험한 뒤 중국서 체육을 공부했고, 재단에 입사해 이혜진 대리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말 그대로 ‘태권 가족’이다.

 

조 대리는 “(수빈이가) 전에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말은 했지만 다소 막연하게 들렸다”며 “이번에는 선수들과 함께 입장하고 경기를 가까이에서 본 뒤 목표가 훨씬 구체적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대회를 앞두고 일찍 출발하는 것도 싫어했는데 이번에는 필요한 도복부터 장비와 물건들을 혼자서 스스로 챙기고 가방까지 미리 준비했다”며 “어디선가 불이 붙은 것 같았다”고 껄껄 웃었다.

 

태권도 인연으로 만나 부부가 된 태권도진흥재단 조재동 대리와 이혜진 대리는 태권도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딸 조수빈 양(오른쪽)의 유년기 도복 사진. 사진=조재동 대리 본인 제공
태권도 인연으로 만나 부부가 된 태권도진흥재단 조재동 대리와 이혜진 대리는 태권도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딸 조수빈 양(오른쪽)의 유년기 도복 사진. 사진=조재동 대리 본인 제공
태권도 선수 곽민주와 김유진, 서은수(왼쪽부터). 사진=스포츠월드 김종원 기자
태권도 선수 곽민주와 김유진, 서은수(왼쪽부터). 사진=스포츠월드 김종원 기자

 

손을 맞잡은 선수들에게도 어린이와의 동행은 색다른 자극이 됐다. 남자 58㎏급 동메달을 목에 건 서은수(한국체대)는 “함께 입장한 친구가 제가 롤모델이라 꼭 저와 나가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며 “저도 어릴 때 배준서, 장준 선배를 롤모델로 삼아 꿈을 키웠다. 그래서 하이파이브도 더 해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대회 여자 67㎏급 동메달리스트 곽민주(한국체대)도 “함께 들어간 아이가 한국 선수와 꼭 입장하고 싶어 했다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자 57㎏급 은메달리스트 김유진(울산광역시체육회)은 “저도 그 나이 때 언니, 오빠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며 “이제 아이들이 저를 보며 꿈을 꾼다고 생각하니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성장한 이들이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됐다는 사실을 새삼 마주한 셈이다.

 

사실 다른 종목, 특히 축구 팬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어린이가 선수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플레이어 에스코트’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적인 경기 전 문화로 자리 잡은 바 있다.

 

물론 태권도 대회에선 의무화된 제도나 규정은 아니다. 2017년 무주 세계선수권과 지난해 방콕 GP 챌린지에서는 비슷한 연출을 볼 수 있었지만, 지난해 우시 세계선수권과 그랜드슬램 챌린지 등에서는 운영되지 않았다. 대회마다 다른 입장 방식 가운데 이번 무주는 선수와 미래 세대가 함께 걷는 방법을 택했다.

 

현장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졌다. 이번 대회 관중석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경기를 지켜보는 가족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나아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스타 선수와 손을 잡고 코트에 등장하는 모습은 어린 관중에게도 태권도 무대를 한층 가깝게 느끼게 했다는 평가다.

 

WT 관계자는 “국내·외 선수들도 모두 이구동성이다. 어린이와 함께 입장하는 것을 좋아했고 관중 반응도 좋았다”며 “어린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주고, 대회에는 보다 친근한 분위기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무주 설천초 2학년 조수빈 양(사진 왼쪽)과 태권도 서은수. 사진=세계태권도연맹·태권도진흥재단 공동 제공
무주 설천초 2학년 조수빈 양(사진 왼쪽)과 태권도 서은수. 사진=세계태권도연맹·태권도진흥재단 공동 제공


무주=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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