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팬심’ 악용…암표를 부르는 K-팝 [암표와의 전쟁]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을 이틀 앞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인근에 암표 판매 단속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제공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을 이틀 앞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인근에 암표 판매 단속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제공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은 시장 가격을 높인다. K-팝 공연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그 불균형을 노리는 이들이 바로 암표상이다. 인기 가수의 공연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작 공연을 기다려온 팬들은 티켓 한 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지만 동시에 웃돈을 얹은 암표가 쏟아진다.

 

K-팝 공연시장에 암표가 성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객석 공급 대비 과다한 수요다. 하지만 이면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티켓을 구입하거나 대리티켓팅으로 수익을 내는 업자들이 존재한다. 불법적으로 티켓을 대량 확보하고 정상 가격 대비 터무니 없는 금액을 제시한다. 공연 시작이 임박할 때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좌석을 비워두는 경우도 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팬들로서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팬들의 간절한 마음을 악용해 암표업자들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방탄소년단(BTS) 콘서트가 열리는 15일 BTS의 팬 '아미(ARMY)' 들이 연제구 아시아드주경기장 인근 광장에서 북적이고 있다. 뉴시스 제공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방탄소년단(BTS) 콘서트가 열리는 15일 BTS의 팬 '아미(ARMY)' 들이 연제구 아시아드주경기장 인근 광장에서 북적이고 있다. 뉴시스 제공

◆팬덤 확장이 부른 불균형

 

K-팝 특유의 예매 구조는 이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일정 금액을 내고 사전에 공식 팬클럽에 가입한 팬들에게 먼저 티켓팅 기회를 주는 '팬클럽 선예매'는 대부분의 가수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문제는 좌석은 한정돼 있는데 팬클럽 가입자 수는 상시로 늘어난다는 데 있다. '공식 팬클럽 가입자 수'가 팬덤 규모를 가늠하는 척도로 쓰이면서, 선예매의 문턱을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경쟁을 심화시켰다. 매번 티켓팅에서 좌절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가입 시기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기수제' 도입 요구도 나오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이런 불만 속에서 최근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국내 선예매' 방식이다. 기존에는 국내외 팬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한 통합 선예매가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전체 좌석 중 일부를 국내 팬클럽 가입자에게 먼저 배정하고, 이후 글로벌 예매로 남은 좌석을 열고, 마지막으로 팬클럽 미가입자를 위한 일반 예매를 진행하는 수순이다. 지난 5월 그룹 엔하이픈의 '블러드 사가'를 시작으로 하이브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이 순차적으로 이 방식을 도입했고, SM·JYP·YG엔터테인먼트도 뒤이어 적용했다. 해외 거주자는 물론 해외에 기반을 둔 암표상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이 조치는 또 다른 논쟁을 낳았다.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일부 외국인 팬들은 국내 선예매가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의 크기에는 국적이 있을 수 없지만, 해외 기반 암표상의 조직적 거래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 당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안전 관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 당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안전 관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암표방지법 도입, 현실은?

 

이런 팬덤 구조를 파고드는 암표를 막기 위해 정부도 나섰다. 지난달 28일 본격 시행된 개정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은 매크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 범위를 넓히고, 과징금을 판매금액의 최대 50배까지 강화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규제의 실효성 여부를 두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암표방지법에 따르면 정가보다 비싸게 팔았다고 무조건 부정판매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판매자의 동의 여부, 상습성 또는 영업성 등 법이 정한 요건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판매자의 동의'를 받는 거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지만 웃돈 거래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계정을 바꿔가며 거래하면 '상습성' 여부를 가리기도 애매해진다. 직접 구매한 티켓 한 장을 고가에 거래한다면 이 또한 단속에서 벗어난다. 결제 수단을 국내 발행 카드로 제한하는 조치도 국내에 거주하는 암표상까지 걸러내지는 못한다.

 

실제로 지난해 문체부가 운영하는 공연·스포츠 암표 통합신고 누리집에 접수된 공연예술 분야 신고는 1649건이었다. 이 중 실제 조치가 가능한 유효 신고는 143건(8.7%)에 불과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6 상반기 공연 티켓 판매액만 8094억5437만원에 달한다. 이중 대중음악은 4527억원, 절반에 가깝다. 공연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불법 거래에 따른 피해액과 시장 왜곡 위험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공연 주최 측과 티켓 예매처의 철저한 단속과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수적인 이유다.

 

◆ "암표 STOP"…인식 개선이 먼저

 

민간 차원의 암표 근절 움직임도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는 2024년부터 음원 사재기·공연 암표 근절 모니터링 및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암표 제로'를 목표로 자체 개발한 암표 대응 자동화 시스템(SMAIT)을 가동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광학 문자 인식(OCR) 기술을 적용해 부정 거래 게시물을 식별해내는 모니터링 방식을 활용 중이다. 모니터링 범위도 확대해 국내 중고플랫폼을 비롯해 해외 6개국 플랫폼과 SNS상의 부정 거래 게시물을 식별·차단하고 있다.

 

온라인 모니터링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현장 대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빅뱅 월드투어 현장에서는 암표 근절 캠페인 부스를 운영해 국내외 관람객 850여 명의 호응을 끌어냈다. 현장에서 만난 20대 A씨는 “유명한 공연장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 암표상들도 돌아다니고 있다. 경찰을 제외하고 사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캠페인 부스 운영과 함께 현장 암표 모니터링 활동도 병행했다. 인근 지역 순찰 도중 포착된 암표상과 암표가 이루어지는 현장 등에 대하여 고양경찰서로 인계됐다. 음공협 고기호 회장은 "공연을 기다려온 팬들이 정당한 방식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암표는 공연 예술의 가치를 훼손하고 시장을 어지럽히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강조하며 "단순 모니터링을 넘어 암표 거래로 인해 아티스트와 관객이 피해를 입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협회의 의지를 드러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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