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더독일 때 더 잘하는 것 같다.”
한동안 자신을 향했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태권 좀비’ 배준서(강화군청)가 세계 정상급 강자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다시 정상에 섰다. 그는 “주변의 의심이나 걱정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 해오던 운동을 하다 보면 결국 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준서는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2026 세계태권도 그랑프리 시리즈 남자 58㎏급서 우승했다. 정상에 서는 과정은 극적이었다. 16강에서 현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아볼파즐 잔디(이란)를 꺾었고, 준결승에선 2025 우시 세계선수권 우승자이자 최우수선수(MVP) 서은수(한국체대)를 넘었다. 결승에서 마주한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준(경희대)마저 제압했다. 세 경기 모두 1라운드를 내준 뒤 2-1로 뒤집었다.
특히 잔디와의 맞대결에서는 배준서 특유의 압박 태권도가 빛났다. 지난해부터 좀처럼 패하지 않으며 한국 선수들에게 연승을 거둔 상대였지만, 배준서는 거리를 좁혀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그는 “잔디의 발이 워낙 날카로워 걱정했지만 막상 붙어보니 앞발을 끊어낼 만했다”며 “2라운드부터 지쳐가는 게 보였다. 끝까지 체력을 갉아낸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후배 박태준의 조언도 힘이 됐다. 배준서는 “(박)태준이가 잔디에 대한 여러 팁을 알려줬다”며 “국내 선수들이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선후배다. 잔디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못 이길 선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주는 또 한 번 ‘역전의 땅’이 됐다.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열린 그랑프리 챌린지 결승에서도 3라운드 종료 직전 뒤차기로 역전해 이번 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이번 박태준과의 결승에서도 막판 뒤차기로 승부를 뒤집었다. 그는 “태권도원의 기운이 좋은 것 같다. 나에게 무주는 역전의 땅”이라며 웃었다.
이번 우승은 반등의 의미도 크다. 2019 맨체스터, 2023 바쿠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던 배준서는 지난해 우시 세계선수권 예선에서 탈락했고, 올해 아시아선수권과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후배들의 거센 추격 속에 ‘배준서의 시대가 지난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왔다.
마음까지 꺾이진 않았다. 대신 먼 목표보다 눈앞의 무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배준서는 “예전에는 장기적인 목표부터 이야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겸손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이제는 전국체전과 그랑프리 파이널부터 바라보려 한다. 간절함은 늘 있지만 욕심에 스트레스받기보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도 끝이 아닌 과정으로서 초점을 맞춘다. 그는 “이번 대회가 나를 증명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훈련해 더 큰 증명을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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