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곤·이종철 작가의 판화 2인전 《PRINT DIALOGUE》가 11일부터 열흘간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열린다. 1990년대 한국 현대 판화의 흐름 속에서 각각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창적인 작업과 교육을 이어온 두 중견 작가는 약 30년 만에 다시 '판화'라는 매체 앞에서 만나 미학적 대화를 나눈다. 이미지가 빠르게 생성되고 소멸하는 디지털과 AI 시대 속에서, 두 작가는 판을 새기고, 잉크를 올리고, 밀어내며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판화 고유의 '느린 제작 과정'과 '손의 행위'로 귀환하여 현대 판화의 본질적인 가치와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정상곤 작가는 파낸 목판의 표면을 다시 복구하고 그 위에 새로운 풍경을 덧새기는 독창적인 작업 프로세스를 선보인다.
주요 출품작인 목판화 연작 《두 개의 풍경》은 선명하고 투명한 하늘과 거친 질감의 레이어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나뭇결의 묵직한 흔적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층위를 물리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오랜 시간 사진과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거쳐 30년 만에 다시 동판 앞에 선 이종철 작가는 신작 연작 《Sunshower(여우비)》를 선보인다.
성수동 거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업은 동판화 특유의 정교하고 감각적인 에칭 선과 번짐 기법, 그리고 절제된 구도를 통해 맑은 하늘과 빗줄기가 기묘하게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과 멈춰진 시간의 감각을 포착해낸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엄청난 속도로 인간의 삶과 예술 전반을 침범하며 기존의 인간적 역할을 빠르게 대체해 가고 있는 오늘날, 이번 전시는 더욱 커다란 미학적 던짐을 지닌다. 기계와 알고리즘이 순간적으로 완벽한 이미지를 생성해 내는 시대일수록, 물질의 저항을 신체로 견디며 오롯이 작가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판화 작업은 대체 불가능한 '인간 본연의 영역'과 '손의 순수한 가치'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해 낸다.
약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온 두 중견 작가가 뜻을 함께하여 귀환한 이유 역시 이러한 판화 고유의 인간적 감각과 시대적 중요성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목판의 묵직한 질감과 동판의 섬세한 선묘가 어우러지는 이번 《PRINT DIALOGUE》 전시는 두 작가가 지나온 깊은 탐구의 시간을 돌아보는 자제이자, AI 시대 속에서 인간 예술이 나아가야 할 고유한 본질과 미래를 향해 울림 있는 질문을 던지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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