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여름 역시 지프의 계절…오대산 넘어 동해로

 

서울을 출발해 춘천을 거쳐 오대산으로 향했다. 상원사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를 달린 뒤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1박2일 일정이다.

 

시승차는 평범한 지프 랭글러가 아니었다. JL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을 기반으로 MOPAR/JPP 2인치 리프트업 키트와 17인치 비드락 캐퍼블 휠, 35인치급 올터레인(A/T) 타이어를 조합한 차량이다. 사제 튜닝보다는 지프가 공식 서비스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해온 순정 오프로드 튜닝에 가까운 구성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존재감이 상당하다. 2인치 높아진 차체 아래 큼지막한 타이어가 자리 잡고 있다. 검은색 휠 가운데를 두른 은색 링도 MOPAR 비드락 캐퍼블 휠 특유의 디자인을 드러낸다.

 

당연히 승하차는 편하지 않다. 일반 SUV처럼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밀어 넣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차에 '올라타야' 한다. 내릴 때도 한 발을 아래로 길게 뻗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부터가 랭글러의 맛이다.

 

 

◆35인치 타이어 신고 오대산으로…포장도로 끝나자 제 세상

 

서울을 빠져나와 춘천으로 향하면서 가장 먼저 예상이 빗나간 부분은 승차감이었다. 2인치 리프트에 35인치급 A/T 타이어를 장착했으니 장거리에서는 꽤 피곤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는 달랐다. 의외로 민첩했고 노면의 잔충격을 무작정 실내로 전달하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도 차체 움직임이 예상보다는 안정적이었다.

 

물론 최신 도심형 SUV처럼 운전자를 노면과 완전히 격리하는 차는 아니다. 큰 타이어가 굴러가는 느낌과 차체 움직임이 계속 전해진다. 하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큰 오프로더를 몰고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요즘 신차보다 단순하다. 차로 중앙을 알아서 따라가는 중앙유지 기능이 없어 운전자가 직접 스티어링휠을 잡고 방향을 조절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장거리를 달리자 생각이 달라졌다. 앞차와 설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ACC)이 가감속 부담을 덜어주는 가운데 방향은 운전자가 직접 잡는다. 운전을 자동차에 지나치게 맡기지 않으니 오히려 전방을 계속 주시하게 된다. 이번 여정에서는 이 정도 보조 기능만으로 충분했다.

 

춘천을 지나 오대산으로 접어들자 이 차를 굳이 2인치 높이고 35인치급 타이어를 끼운 이유가 명확해졌다. 상원사로 향하는 비포장 구간에 들어서도 긴장할 일이 전혀 없었다. 움푹 파인 노면이나 돌이 드러난 곳을 만나도 승용차처럼 바닥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 높은 지상고와 큰 타이어가 비포장 노면을 여유롭게 받아낸다.

 

루비콘의 오프로드 성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히려 자동차보다 운전자가 먼저 겁을 먹는다. 여기로 들어가도 되나 싶은 길에서도 랭글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앞으로 나간다. 도심에서는 다소 과장돼 보였던 차체 높이와 거대한 타이어가 흙길에서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폭우 예보도 여행의 일부…지붕 열자 오대산이 차 안으로

 

이날 밤 강원 동해안에는 많은 비가 예보돼 있었다. 평범한 승용차로 답사를 떠났다면 일정부터 다시 들여다봤을 날씨였다 하지만 이번 여정의 동반자가 랭글러 루비콘이라는 점 때문에 비 소식 자체가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에 젖은 비포장도로와 변화하는 노면에서 지프의 성격을 조금 더 확인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물론 지프라고 폭우를 이기는 자동차는 아니다. 집중호우 때 계곡이나 하천 주변 도로, 침수구간에 진입하는 것은 차량의 오프로드 성능과 별개의 문제다. 기상특보와 도로 통제 여부를 확인하고 위험구간을 피한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사륜구동과 높은 지상고는 악천후에서 여유를 더해줄 뿐 자연재해를 통과할 수 있는 면허증은 아니다.

 

 

오대산에서는 소프트톱을 열었다. 캔버스 재질의 지붕이 걷히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머리 위로 나무와 하늘이 들어오고 숲 냄새와 바람, 타이어가 흙을 밟는 소리까지 그대로 실내로 밀려왔다.

 

개방감만 놓고 보면 웬만한 로드스터 컨버터블이 부럽지 않다. 오히려 낮은 스포츠카와 정반대의 재미가 있다. 높은 시트에 앉아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머리 위까지 열어놓으니 움직이는 전망대에 올라탄 기분이다.

 

여기에 엔진 소리가 더해진다. 최근 자동차는 엔진음과 진동을 얼마나 완벽하게 차단하느냐를 경쟁한다. 전기차에서는 엔진 자체가 사라졌다. 랭글러는 반대편에 서 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엔진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35인치급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흙을 밟는 소리도 귀에 들어온다.

 

 

소프트톱까지 열면 바람과 엔진, 타이어 소리가 뒤섞인다. 정숙성 평가라면 감점 요인이지만 오대산에서는 이 소리를 없애고 싶지 않았다. 날것의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미국에서 랭글러를 즐기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름이면 도어와 루프를 떼거나 소프트톱을 열고 해변과 산악 트레일로 향하는 모습이 하나의 지프 문화로 자리 잡았다. 미국 유타주 모압이나 콜로라도의 산악도로에서는 여름철 오픈에어링과 오프로드 주행을 함께 즐기는 랭글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차’보다 야외활동 자체를 즐기기 위한 도구에 가까운 셈이다.

 

오대산을 빠져나와 속초로 향하면서 다시 지붕을 열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그대로 실내로 들어왔지만 굳이 창문을 닫고 싶지 않았다. 역시 여름은 지프의 계절이다.

 

 

◆불편함까지 캐릭터…도로 끝나도 여행은 계속된다

 

시승한 JL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은 2.0ℓ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다. 국내 판매 사양 기준 최고출력은 272마력, 최대토크는 40.8㎏·m 수준이다. 루비콘에는 전자식으로 앞뒤 차동기어를 잠그는 트루-락(True-Lok) 디퍼렌셜과 전자식 프런트 스웨이바 분리 기능 등이 적용돼 험로 대응력을 높였다.

 

여기에 이번 차량은 MOPAR/JPP 2인치 리프트업과 17인치 비드락 캐퍼블 휠, 35인치급 A/T 타이어를 더했다. 일반 루비콘보다 오프로드 성격을 한층 강조한 구성이다.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잘 닦인 아스팔트와 빌딩 사이로 들어오자 2인치 리프트와 35인치급 타이어는 또다시 과해 보였다. 차에 타고 내릴 때마다 높은 차체도 귀찮다. 스티어링휠을 직접 잡아야 하고 엔진과 타이어 소리도 들린다. 지붕을 열면 바람까지 들어온다. 그런데 랭글러에서는 이런 비효율이 이상하게 단점으로만 남지 않는다.

 

요즘 SUV는 점점 ‘지붕 높은 승용차’에 가까워지고 있다.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운전자 대신 자동차가 해주는 일도 많아졌다. 더 편하고 더 효율적이다. 랭글러는 그 반대편에서 여전히 자동차와 운전자 사이에 적당한 일거리를 남겨놓는다. 특히 인치 리프트와 터프한 타이어를 갖춘 이 차는 그 성격을 한층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신 포장도로가 끝나도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춘천을 지나 오대산의 흙길을 밟고 속초까지 달린 1박2일. 밤에는 동해안에 폭우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 모든 변화가 부담이라기보다 여행의 일부로 느껴졌다. 이 차가 가장 잘한 일은 운전자를 목적지까지 가장 편하게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 여름에 지프를 타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글·사진=김재원 기자 jkim@sportsworldi.com



김재원 기자 jkim@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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