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무비] 할리우드 속 韓배우, 단역 넘어 ‘주연’으로…‘역할의 벽’은 여전

영화 '이터널스' 마동석과 안젤리나 졸리(왼쪽부터).
영화 '이터널스' 마동석과 안젤리나 졸리(왼쪽부터).

 

할리우드 작품에서 한국 배우를 만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짧은 대사조차 없는 단역이나 인종적 특징을 강조한 역할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작품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아시아 배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변화의 배경에는 K-콘텐츠의 위상이 있다. 영화 ‘기생충’(2019)과 ‘미나리’(2021),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021) 등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공이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에 힘을 보탰다. 특히 서구 대형 프랜차이즈의 주역이자 서사의 중심축으로 당당히 발탁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마동석은 마블 영화 ‘이터널스’(2021)에서 주연 중 한 명인 길가메시 역을 맡아 강력한 액션과 더불어 할리우드 톱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정서적 유대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프랜차이즈 영화 ‘익스트랙션’ 세 번째 작품 합류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박서준 또한 ‘더 마블스’(2023)에 얀 왕자 역으로 합류해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이름을 올렸다.

 

디즈니플러스 '애콜라이트' 이정재.
디즈니플러스 '애콜라이트' 이정재.

 

‘오징어 게임’ 덕분에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정재는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2024)의 주연 제다이 마스터 솔 역을 꿰차며 한국 배우로서는 이례적으로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중심에 섰다. 서구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제다이 세계관의 중심인물 자리에 한국인 배우가 당당하게 선 것이다. 

 

한국계 배우들의 활동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스티븐 연은 ‘워킹 데드’(2010∼2022) 시리즈와 ‘성난 사람들’(2023) 등을 통해 한국계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존 조 역시 ‘서치’(2018)에서 주류 할리우드 스릴러의 주인공을 맡으며 아시아계 배우도 국적이나 인종 설명 없이 관객을 끌고 가는 평범한 아버지이자 장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밖에도 산드라 오, 그레타 리, 대니얼 대 킴 등이 할리우드 작품에서 주연과 주요 조연을 맡으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단순한 이민자나 주변 인물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출연 기회가 늘었다고 해서 역할의 문이 완전히 넓어진 것은 아니다. 박서준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합류는 당초 큰 기대를 모았으나 실제 영화 내 분량은 3~5분 안팎에 불과했다. 특히 극 중에서 노래와 춤으로 대화하는 이국적 행성의 군주로만 소모됐다. 서사의 중심과 무관한 아시아 마케팅용 카메오에 그쳤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한 이유다.

 

영화 '더 마블스' 박서준
영화 '더 마블스' 박서준

 

실제로 할리우드 현장에서는 아시아 배우를 둘러싼 고정관념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AP통신은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현주소를 짚으며 최근 서구 제작진이 과거의 막연한 동아시아인 대신 구체적으로 한국인 캐릭터를 찾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여전히 괴짜 기술 프로그래머(너드) 등 인종적 클리셰에 갇힌 배역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LA의 한 캐스팅 에이전트는 “배우의 폭넓은 연기 역량을 고려해 이런 전형적인 역할에는 아예 오디션 지원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할리우드 내 뿌리 깊은 스테레오타입 한계를 전했다.

 

할리우드에서 한국 배우의 입지는 ‘얼마나 등장하느냐’에서 ‘어떤 인물로 등장하느냐’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다.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로 한국 배우를 찾는 수요는 늘었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곧 캐릭터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액션, 코미디, 로맨스, 악역 등 장르와 무관하게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 배우를 향한 할리우드의 시선이 한 단계 더 넓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