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부전 환자와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 중 하나가 “이제 투석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라는 의사의 말이다. 투석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두려움에 치료를 지나치게 미루거나, 반대로 필요하지 않은 시점에 서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투석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장을 대신해 노폐물과 수분을 걸러내는 신대체요법이다. 환자의 상태에 맞춰 적절한 시점에 시작하면 생명과 일상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권중헌 경산중앙병원 내과 진료과장의 도움말로 만성신부전 환자가 알아야 할 투석 치료와 관리 원칙을 살펴봤다.
◆신장 기능은 왜 회복하기 어려울까
신장은 혈액 속 노폐물과 과잉 수분을 소변으로 배출하고 혈압과 전해질 균형을 조절한다. 조혈 호르몬인 에리스로포이에틴과 활성 비타민D를 생성하는 역할도 한다.
만성 신장질환은 신장 기능 이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다. 사구체여과율(GFR)에 따라 1~5단계로 나뉜다. 손상된 신장 조직은 회복이 쉽지 않고, 남아 있는 조직에 부담이 집중되면서 기능 저하가 이어질 수 있다.
5단계는 GFR이 15mL/분/1.73㎡ 미만인 상태다. 다만 5단계에 들어섰다고 곧바로 모든 환자가 투석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신장 기능과 요독 증상, 영양 상태, 수분·전해질 조절 여부 등을 종합해 신대체요법이 필요한 시점을 판단한다. 국내 말기 신부전의 주요 원인으로는 당뇨병성 신장병증과 고혈압성 신장질환, 만성 사구체신염 등이 꼽힌다.
권중헌 진료과장은 “만성신부전은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신장 기능이 크게 떨어진 뒤 피로감과 식욕 저하, 부종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신장 기능 저하가 상당히 진행됐다면 투석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석 시점, 수치와 증상 함께 살펴야
투석 시작 여부는 GFR 수치 하나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심한 구역과 구토, 식욕 저하에 따른 체중 감소, 극심한 피로, 호흡곤란, 의식 변화 등 요독 증상이 있는지 함께 살핀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체액 과다나 전해질 이상 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이러한 문제가 뚜렷하면 GFR이 비교적 높더라도 투석이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GFR이 낮아도 증상이 없고 영양과 수분·전해질 상태가 안정적이라면 의료진의 면밀한 관찰 아래 투석 시기를 조정하기도 한다.
투석을 지나치게 일찍 시작하면 치료 부담이 불필요하게 커질 수 있고, 너무 늦추면 요독증과 폐부종, 고칼륨혈증 등 위험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장 기능이 계속 떨어지는 환자는 투석 방법을 미리 교육받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권 과장은 “투석이 두려워 치료를 미루다가 응급으로 시작하면 계획적으로 준비한 경우보다 적응이 어렵고 합병증 위험도 커질 수 있다”며 “당장 투석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신장 기능 저하가 상당히 진행됐다면 전문의와 치료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생활 여건까지 고려해야
투석은 크게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으로 나뉜다. 혈액투석은 동정맥루나 인조혈관을 통해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낸 뒤 투석기로 걸러 다시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주 3회, 한 번에 약 4시간 병원에서 치료한다. 의료진의 관리를 받으며 치료할 수 있지만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혈액투석에 사용하는 동정맥루는 만든 직후 바로 사용할 수 없다. 투석 시작 수개월 전에 수술하고 혈관이 충분히 성숙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복막투석은 복강에 삽입한 카테터로 투석액을 주입하고 배출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낮 동안 직접 투석액을 교환하거나, 취침 중 기계를 이용해 자동으로 시행할 수 있다. 가정에서 치료할 수 있어 직장생활을 이어가거나 병원 방문 부담을 줄이고 싶은 환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 다만 복막염 예방을 위한 위생 관리와 환자 스스로 치료를 수행하는 부담이 따른다.
권 과장은 “어느 방법이 더 좋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며 “잔여 신기능과 심혈관 상태, 생활 환경, 환자의 치료 수행 능력과 선호도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사·수분 관리도 치료의 일부
투석을 시작한 뒤에도 식사와 수분 관리가 중요하다. 투석 사이에 쌓이는 노폐물과 수분, 전해질을 줄여야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중 칼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위험한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어 검사 결과에 따라 바나나와 감자, 토마토, 콩류, 견과류 등 고칼륨 식품의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인이 축적되면 뼈가 약해지고 혈관 석회화 위험이 커질 수 있으므로 유제품과 견과류, 가공식품 등에 포함된 인도 주의해야 한다. 필요하면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식사와 함께 인 결합제를 복용한다.
수분 섭취량은 소변량과 투석 사이 체중 증가, 심장 기능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정한다. 투석 전에는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투석을 시작한 뒤에는 영양 상태와 근육량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양을 섭취해야 한다. 구체적인 섭취량은 환자의 체중과 검사 결과, 동반 질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의료진이나 임상영양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권 과장은 “투석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식이 제한”이라며 “칼륨과 인, 수분을 무조건 제한하기보다 검사 결과와 잔여 신기능에 맞춰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석 시작 후에도 신장이식 고려할 수 있어
투석을 시작했다고 신장이식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식이 가능한 환자에게 신장이식은 투석에서 벗어나 신장 기능을 회복하고 장기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치료법이다.
이식 신장은 생체 기증이나 뇌사자 기증을 통해 받을 수 있다. 생체이식은 기증자의 건강 상태와 혈액형, 면역학적 적합성 등을 평가해 진행한다. 뇌사자 이식은 장기이식 대기자로 등록한 뒤 기다려야 하며 대기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식 후에는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감염 예방과 이식 신장 기능 확인을 위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고령이거나 심혈관질환 등 동반 질환이 있다면 수술 위험과 기대 효과를 평가해 이식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권 과장은 “나이와 전신 상태가 허락한다면 투석을 시작할 때 이식 대기 등록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며 “투석은 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치료가 될 수도 있고, 이식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장기간 삶을 이어가는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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