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가 첫 대형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을 앞세워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상단을 공략한다. GV90은 단순히 GV80보다 큰 차가 아니다. 디자인과 전동화, 안전·소프트웨어 기술을 집약해 브랜드의 기준점을 끌어올리는 ‘상향 이정표’다.
제네시스는 지난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에서 월드 프리미어 행사를 열고 GV90과 초호화 사양 ‘GV90 네오룬’을 공개했다. 2024년 선보인 네오룬 콘셉트를 양산차로 옮겼다. 4인승 네오룬 퍼스트 에디션도 함께 내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기술과 디자인을 고객의 직관적인 경험으로 연결하는 것이 럭셔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객을 귀한 손님으로 대한다는 제네시스의 ‘손님’ 철학을 차량 공간과 승하차 과정에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희소성 대신 기술·공간…‘사용 가능한 초호화’
GV90 일반형은 6·7인승으로 가족과 비즈니스 수요를 흡수한다. 네오룬은 6인승과 4인승으로 쇼퍼드리븐 시장을 겨냥한다. 판매를 담당하는 플래그십과 브랜드의 기술·디자인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 모델을 한 차종에 함께 둔 구조다.
롤스로이스 컬리넌이나 벤틀리 벤테이가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이들이 역사와 주문 제작, 희소성을 판다면 GV90은 전동화 기술과 공간 활용성을 결합한 ‘사용 가능한 초호화’를 지향한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전용 eMP 플랫폼에서 개발한 점도 차별점이다.
123.5㎾h 배터리를 탑재해 7인승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 약 500㎞를 목표로 한다. 350㎾ 충전기로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22분이 걸린다. 앞뒤 모터 합산 최고출력은 490㎾, 최대토크는 800Nm다. 듀얼 E-LSD와 멀티챔버 에어서스펜션, 후륜조향으로 승차감과 기동성을 함께 겨냥했다.
네오룬에는 고정형 B필러를 숨기고 앞뒤 문이 마주 열리는 코치도어를 적용했다. 고강도 이중 빔과 일반 차량보다 1.5배 두꺼운 프레임으로 충돌 안전을 보강했다. 정차 중 앞좌석을 180도 돌릴 수 있고 4인승에는 냉장고와 테이블, 전동 블라인드가 들어간다.
◆中 사양 공세엔 안전·프리미엄 완성도로 승부
중국 프리미엄 브랜드의 추격은 가장 큰 변수다. 니오 ES9과 덴자 N9, 지커 9X, 샤오펑 GX 등은 대형 화면과 첨단 운전자 보조, 초고속 충전 기술을 넣고도 유럽 경쟁차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중국 판매가 2020년 이후 약 25%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GV90은 사양 경쟁을 피하지 않되 개수에만 매달리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23.6인치 OLED 화면은 정차하면 24.6인치로 확장된다. 플레오스 커넥트와 생성형 인공지능 비서 ‘글레오 AI’, 25개 스피커로 구성한 뱅앤올룹슨 음향 시스템도 갖췄다.
차별화의 무게중심은 정숙성과 안전에 뒀다. 앞유리부터 비전 루프, 뒷유리까지 두께 5㎜ 이상의 차음유리를 적용했다.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을 포함한 12개 에어백, 배터리 열폭주 방지 기술과 이상 사전 진단 기능도 넣었다. 편의장비에 앞서 차체와 배터리 안전에서 기본기를 쌓았다는 의미다.
한국적 고급감도 강점이다. 실제 목재 바닥에 복사 난방을 결합해 전통 온돌을 재해석했다. 외관은 달항아리의 절제된 곡선을 모티브로 삼았다. 유럽 고급차를 모방하기보다 ‘한국에서 출발한 럭셔리’라는 서사를 상품에 심었다.
제네시스가 누적 판매 100만대를 8년 안에 달성하며 확보한 고객 기반도 자산이다. 현대차그룹의 생산·품질관리 역량과 글로벌 판매망을 활용하고 GV90의 신기술을 GV80과 GV70 등으로 확산할 수 있다.
관건은 가격과 인증 주행거리, 소프트웨어 완성도다. 중국차와 가격으로, 롤스로이스·벤틀리와 역사로 맞붙기는 어렵다. 대신 한국적 미감과 세심한 환대, 전기차의 공간 자유도와 안전을 일관되게 구현한다면 독자 영역을 만들 수 있다.
GV90의 역할은 컬리넌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제네시스가 비교되는 상대를 한 단계 위로 옮기고 새로운 기준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전환하는 데 있다. 초고가 SUV의 위엄과 중국 전기차의 기술 속도 사이에서 ‘절제된 한국형 럭셔리’를 구축하는 것이 GV90의 경쟁력이다.
미국에서는 2027년 초 판매를 시작한다. 뉴욕 제네시스하우스에서는 GV90 실차를 2027년 봄까지 전시한다. 국내에서는 연내 출시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가격과 계약 개시일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유럽도 관심 고객을 모집하는 단계로 국가별 사양과 판매 일정은 추후 공개한다.
김재원 기자 jkim@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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