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극장가에 상어와 살인마를 상대로 극한 생존 이야기를 그려낸 스릴러가 찾아왔다. 영화 ‘데인저러스 애니멀스’는 자유롭게 서핑을 즐기던 여성이 상어에 집착하는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수어사이드 스쿼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배우 제이 코트니가 이번 작품에서는 잔혹한 살인마 터커로 변신해 영화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영화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주 골드 코스트를 찾은 서퍼 제피르(해시 해리슨)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매일 서핑을 즐기며 여유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온다. 제피르는 연쇄살인범 터커(제이 코트니)에게 납치되고 정신을 차린 뒤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터커는 사람들을 납치해 상어의 먹잇감으로 던지는 잔혹한 범행을 반복했고 제피르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한다. 이에 제피르는 배 안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번번이 탈출에 실패하고 자신이 상어의 먹잇감이 될 차례가 다가오자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이번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눈길을 끄는 인물은 상어에 집착하는 터커였다. 그는 어린 시절 상어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경험으로 인해, 상어를 단순한 바다의 포식자가 아닌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배 안에는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상어 공격과 관련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정도다. 과거의 강렬한 경험이 현재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다.
터커의 이 같은 극단적 행동을 실제 질환이나 특정 심리 상태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과거의 강렬한 경험이 이후의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정은 우리 몸의 통증을 생각하게 했다. 한 번의 심한 통증이 추후 통증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증 경험이 장기간 지속되면,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계가 반복적인 자극에 영향을 받아 통증에 더욱 민감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통증에 대한 불안이나 과도한 경계가 함께 커지는 식이다.
이 때문에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환자를 치료할 때는 단순히 ‘아픈 증상만 없애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통증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떤 상황에서 심해지는지, 과거에 비슷한 부상이나 통증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같은 통증이라도 발생 원인과 통증의 양상, 지속 기간에 따라 치료 접근이 달라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의학은 신체 통증을 치료할 때 환자의 몸 전체를 살피는 전인적 접근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정 부위의 통증만을 단편적으로 치료하기보다 환자의 체질과 전반적인 신체 상태, 통증의 원인과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침·약침·추나요법·한약 등 다양한 치료법을 활용해 통증 완화와 신체 기능 회복을 함께 도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반복된 통증 자극이 신경계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으며, 한의치료가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되기도 했다. 2017년 발표된 침 치료 관련 리뷰 논문에서는 반복적인 통증 자극이 신경계의 시냅스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켜 이른바 ‘통증 기억’을 형성할 수 있으며, 침 치료가 척수와 뇌의 통증 및 기억 관련 영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2023년 국제학술지 ‘분자 신경생물학(Molecular Neurobiology)’에 게재된 동물실험 연구에서는 전침이 통증 기억과 이와 연관된 불안 유사 행동을 완화할 가능성이 확인됐다.
몸이 보내는 통증에는 그동안 쌓여온 경험과 현재의 상태가 함께 담겨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통증이 반복된다면 ‘왜 계속 아플까’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몸은 지금 무엇을 경고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통증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몸 상태를 정확히 살피고 적절한 치료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오래된 통증의 기억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진호 자생한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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