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색깔에 선수를 맞출 것인가, 가진 선수들로 가장 좋은 색깔을 찾을 것인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린 미국 메이저리그(MLB) 명장 테리 프랑코나 신시내티 레즈 감독의 답은 후자다.
선수들이 잘하는 것은 최대한 끌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감춘다. 때론 자신이 선호하는 야구라도 현재 전력에 맞지 않으면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정해진 색깔을 덧칠하는 게 아니라, 그해 가진 전력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을 찾아가는 게 감독의 일이라는 얘기다. 올 시즌 프로야구서 상황에 따라 선수들의 쓰임새를 달리해온 이범호 KIA 감독 역시 유연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KIA는 19일까지 58승2무48패로 4위다. 4연승을 내달리며 한 계단 위 LG에 1경기 차로 다가섰다. 반면 5위 두산과의 격차도 0.5경기에 불과하다. 한 경기의 무게가 커진 시즌 막판에도 이 감독은 정해둔 틀에 매달리지 않는다. 팀의 현시점 필요에 맞춰 선택을 달리한다.
특히 야수 기용서 이 성향이 선명하다. 올 시즌 KIA가 수비 9개 포지션에서 선발로 내보낸 선수 수를 포지션별로 합치면 57명으로 키움(74명)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다. 포지션당 평균 6.33명으로 현시점 5강 팀 중 가장 높다. 보유한 야수들의 쓰임새를 폭넓게 가져간 셈이다.
그렇다고 중심까지 흔든 것은 아니다. 내·외야 수비의 핵심인 김도영과 김호령을 두 기둥으로 세운 것. 김도영은 3루수 선발의 87.0%, 김호령은 중견수 선발의 94.4%를 책임졌다.
반면 박찬호(두산)가 빠져 새 주인을 찾아야 했던 유격수에선 이 감독이 하주석의 트레이드 영입을 직접 요청하는 등 필요하면 외부에서까지 선택지를 넓혔다.
폭넓은 운용과 함께 결과도 따라왔다. KIA의 수비 효율(DER)은 0.703으로 리그 1위다. 공격에서도 팀 장타율 0.439로 1위, OPS(출루율+장타율) 0.784로 2위에 자리하고 있다.
변화가 필요할 때는 과감했다. 최근 마무리로 변신한 이의리가 대표적이다. 선발 10경기서 1승6패 평균자책점 9.42로 흔들린 바 있다. 결국 두 달 전 일본 단기 연수로 재정비할 시간을 받았다. 이후 반등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불펜 전환 후 평균자책점이 무려 1.35(13⅓이닝 2자책점)다.
마침 KIA도 뒷문의 새 카드가 필요했다. 마무리를 맡았던 성영탁과 정해영이 기복을 보이는 사이 이의리의 존재감이 커졌다. 이달 6경기서 5⅔이닝을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막으며 4세이브를 챙겼다.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마지막 결정은 늘 사령탑의 몫이다. KIA는 강속구 클로저를 얻었고, 이의리는 꼬였던 흐름을 끊었다. 불펜에서 되찾은 자신감은 내년 선발 재도전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을 터. 팀과 선수를 함께 살린 이 감독의 판단 속에 호랑이가 다시 포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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