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증조부’ 하영, 무지가 불러온 후폭풍[SW시선]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 한 배우의 자랑스러운 가족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배우 하영은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흥행에 힘입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월간남친’, ‘참교육’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한 흥행작들에 연이어 출연한 데 이어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이런 엿같은 사랑’의 주연으로 돌아왔다.

 

 탄탄대로 같던 그의 행보에 급제동이 걸렸다. 최근 작품 홍보차 출연한 한 예능에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며 가족사를 소개했다. 증조부, 조부, 부친에 이어 친언니까지 이어진 4대째 의사 집안임을 자랑스럽게 밝힌 것. 무리해서라도 에피소드를 쥐어짜 내는 홍보 방식에, 의학 드라마 출연 경력이 있는 배우가 실제 의사 집안 출신이라는 점은 놓칠 수 없는 소재였을 것이다. 제작진은 ‘대를 잇는 의사 DNA’라는 자막으로 이를 강조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그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안상호라는 사실이 조명되며 논란이 커졌다. 대정친목회는 이완용·송병준이 중심이 된 대표적 친일 단체다. 온라인에서는 방송에서 언급된 가족들의 신상이 모두 공개됐고, 비난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소속사의 수습이 일을 키웠다. 소속사는 “증조부가 안상호는 맞지만 친일 행적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부 안부호 교수가 소록도 국립병원에서 한센병 환자 치료와 연구에 헌신한 의학자라는 사실도 보탰으나, 그가 근무하던 시기 소록도병원에서 이뤄진 강제 단종·낙태 등 인권침해의 역사가 함께 소환되며 논란은 오히려 확산됐다.

 

 입장 발표 이후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버젓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인터뷰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고 말했다. 일본식 생활과 문화를 강조하며 ‘일선동화(내지인과 조선인을 동화시킨다는 명분 아래 추진된 식민 통치 정책)’의 모범 사례로 언론에 활용되던 시기였다. 소속사의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소속사는 입장을 뒤집었다.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뒤늦게라도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다행이지만, 애초에 검증도 없이 사실무근이라 단언했던 성급함이 논란을 키운 셈이다.

 

 연좌제는 언제나 논쟁거리가 된다. 선대의 잘못이 출생을 택할 수 없는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타당한지에 관해서다. 다만 하영의 경우 대중이 분노한 이유는 하나다. 무지를 방치한 채 자랑스럽게 언급했다는 점.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대중은 하영의 말만 믿고 의학계에 헌신한 ‘대단한 집안’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집안의 부와 명예의 대물림을 자부심으로만 받아들였을 뿐, 그 뿌리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영 개인이 증조부의 행적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의 정서를 읽고 그 호감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친일이라는 키워드는 유독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 터진 이번 논란에서 소속사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역사적 사실과 한 인물의 이력을 대중에 전하는 일에 얼마나 신중한 검증이 필요한지 이번 일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는 무책임한 사과는 이미 늦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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