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아시안 팝’ 신설, 포용인가 견제인가

 지난달 29일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이 멤버 각자의 SNS 계정을 통해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미국 최대 대중음악 시상식 그래미상 측에서 K팝, J팝, C팝 등을 아우르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상을 추가한다고 알린 데 따른 반응이다. 이후 열흘 넘게 진행된 국내외 언론미디어의 열띤 반응과 해석은 이미 많이들 알고 있을 듯싶다.

 

 이른바 ‘K팝 게토화 의도’론이다. 이미 2022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페이버릿 K팝 아티스트’ 부문 신설 당시에도, 그 이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의 ‘베스트 K팝’ 부문 당시에도 꼬박꼬박 언급됐던 부분이다. 그렇게 K팝에 따로 부문 상을 신설해 시상하기 시작하면 가장 시선을 모으는 본상 부문에선 제외되기 쉽단 논리. 그렇게 미국 대중음악시장 중심부로 침투하기 시작한 K팝을 견제하려는 꼼수란 해석이 많다.

 

 이런 의혹을 사는 건 비단 대중음악상뿐만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미상의 K팝 견제론이 불거지던 때 오히려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공연 영상을 통해 득을 보고 있다던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도 같은 종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사실 넷플릭스 공식 주간 순위에 ‘종합’ 순위란 없다. 2021년 처음 넷플릭스에서 주간 시청 순위를 발표하던 때부터 변함없이 공식 순위 카테고리는 ‘영어 영화’ ‘비영어 영화’ ‘영어 TV쇼’ ‘비영어 TV쇼’ 넷뿐이다. 영어와 비영어 콘텐츠를 망라하는 ‘종합’ 순위는 대부분 시청률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등에서 발표하는 넷플릭스 외부 추정 자료에 기댄다.

 

 문제는 넷플릭스가 왜 직접 ‘종합’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단 점이다. 비영어 콘텐츠를 따로 묶는 쪽이 ‘비주류’ 콘텐츠끼리 승부 구도로써 홍보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영어권 국가 산업 ‘이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란 명분이 많이 내걸리지만, 시기가 좀 이상하다. 여전히 깨지지 않는 역대 넷플릭스 TV쇼 1위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대 선풍을 일으키던 시점에 나온 ‘비주류 돕기(?)’ 순위였기 때문이다. 그 전엔 스페인어 TV쇼 ‘종이의 집’이 시즌5까지 넷플릭스 공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미 비영어 콘텐츠가 파죽지세로 시장을 공략하는 상황에 난데없이 ‘비주류 돕기’라며 카테고리를 나누고 종합 순위를 만들지 않았단 것.

AP/넷플릭스 제공
AP/넷플릭스 제공

 이에 오히려 현실은 세계적 비영어 콘텐츠 열풍 와중에 영어권, 주로 미국 영상산업을 보호하고 비영어권 영상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카테고리 게토화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글로벌 OTT라곤 하지만 결국은 미국회사이며 그만큼 미국 영상산업과의 공생관계가 뚜렷하기에 나온 결정이란 것. 영어권 시청자들에 친숙한 영어 콘텐츠를 따로 분류해 순위를 내고 홍보하며 이들을 영어권 콘텐츠에 가능한 묶어두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물론 언급했듯, 이 모든 건 여전히 음모론 영역인 게 맞다. 진의는 알 수 없고,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이 같은 의혹도 과거 사례에 비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이란 점 정도는 짚고 넘어갈 필요도 있다. 미국 최대 영화상 아카데미상에서 1956년 신설된 ‘외국어영화상’(현재는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사례다. 처음엔 비영어권 영화들에 대한 배려로 여겨지고 또 그렇게 홍보됐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그 ‘진짜 효과’가 드러났단 것. 1956년부터 1995년까지 장장 40년 동안 비영어 영화가 본상에 해당하는 ‘작품상’ 부문 후보로 오른 건 고작 3편뿐이었고, 그나마도 수상작은 단 한 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성부른 비영어 영화들이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게토화돼 ‘좁은 물’ 안에서만 거론되고 있었어도 그에 이렇다 할 비판도 나오지 않았다. 예술적 성과를 인정해 이미 부문 상을 줬는데 왜 본상까지 더 얹어줘야 하느냐는 인식이 아카데미상 투표권자들 사이 횡행하고 그를 지켜보는 미국 대중까지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들 실제 속사정은 다르단 의견도 있다. 특히 각종 대중문화상 경우가 그렇다. 해외 문화상품을 견제하고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전문 부문 상을 만들었다기보다, 단적으로, 시상식 주최 측에선 해외 문화상품들을 양껏 반영하는 쪽이 상업적으로나 평판상으로나 모두 유리하지만 정작 투표권을 지닌 심사위원들이 그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그를 보완코자 나온 게 전문 부문 상이란 것. 매번 마이너한 부문 후보 정도로나 오르고 정작 수상은 못한 채 돌아가는 통에 점차 해외 아티스트들 시상식 참여 의욕이나 해외 시청자들 관심도가 떨어져 문제가 되니, 어찌 됐든 ‘뭐라도 줘서 보내’ 불만을 잠재우려 한 결과란 얘기다.

 

 만약 그게 현실이 맞다면, 해소 방안은 이미 나와있다. 위 언급한 아카데미상의 방식이다. 2015년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 후보 전원이 백인으로 지명된 데 반발해 시작된 ‘오스카 소 화이트(Oscar So White)’ 캠페인 후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측에선 결국 투표권을 지닌 회원을 훨씬 다양한 범주에서 대거 추가로 뽑아 신규 회원 규모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미국 내 유색인종 영화인들은 물론 세계 영화계에서 영화인들을 대거 새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한국서도 60명 가까운 영화인들이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초청됐단 보도.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배두나, 김민희 등 배우부터 박찬욱, 봉준호 등 감독, 정정훈 등 촬영감독, 이병우 등 음악가까지 다양하다.

 

 엄밀히 2020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기생충’ 신화’도 이 같은 배경하에서 이뤄진 일이고, 2017년부터 10년 동안 본상 작품상 부문 후보로 오른 비영어 영화는 10편(‘미나리’와 ‘패스트 라이브즈’를 포함하면 12편)으로 부쩍 늘어났다. 그래미상도 결국 딜레마를 해소하려면 투표 권한이 있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NARAS) 측에서 적극적으로 해외 음악인들을 대거 초청해 투표권을 주는 방식 외엔 없단 얘기도 된다. ‘K팝 상’이니 ‘아시안팝 상’이니 하는 것들을 신설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현재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한국인 회원은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 멤버들 및 방시혁, 박진영, 황병준, 임형주 등 20여 명 선으로 알려진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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