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포커스] ‘‘빨리 크라” 행복한 재촉… 보폭 키우는 ‘WPBL 키즈’ 선주하-정혜진

한국 여자야구 기대주 선주하(왼쪽)와 정혜진.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본인 제공
한국 여자야구 기대주 선주하(왼쪽)와 정혜진.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본인 제공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실력은 야무집니다(웃음).”

 

한국 여자야구 현장에 행복한 재촉이 늘었다. 고등학생 못지않은 기량을 갖춘 중학생 선수들을 향해 “빨리 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찍부터 기본기와 경기 감각을 탄탄하게 쌓았고, 개인 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은 물론 자신만의 루틴까지 갖췄다. 그중에서도 선주하(15)와 정혜진(14)은 한국 여자야구의 미래를 이끌 자원으로 꼽힌다.

 

두 선수가 야구에 빠진 계기는 공교롭게도 우연에 가까웠다. 선주하는 남동생의 팀이 대회 출전 인원 한 명을 채우지 못하자 대신 경기에 나서며 처음 글러브를 잡았다. 정혜진 역시 공통분모가 있다. 남동생이 먼저 야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흥미를 키운 것. 이에 “부모님을 석 달 동안 설득한 끝에 운동을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우연히 들어선 그라운드였지만 야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정혜진은 타격한 공이 뻗어나가는 순간의 짜릿함에 매료됐고, 선주하는 마운드에서 위기를 막아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성취감에 빠졌다.

 

경기에서 맛본 즐거움과 보람은 자연스럽게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야구는 어느새 진지한 진로가 됐다.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포수 정혜진. 사진=본인 제공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포수 정혜진. 사진=본인 제공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투수 선주하.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투수 선주하.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물론 두 선수가 그려온 성장의 궤적엔 차이가 있다. 선주하는 일찌감치 ‘야구 천재’로 불리며 또래 가운데 두드러진 기량을 인정받았다. 계속해서 ‘우상향’ 성장 곡선을 그리며 한국 여자야구의 대표적인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마운드 위 짜릿한 도파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점을 콕 집은 선주하는 “중요한 순간 삼진을 잡거나 실점 위기를 넘겨 팀 승리에 기여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그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야구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든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보다 한 살 어린 정혜진은 최근 들어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유소년 상비군 대표팀 훈련에도 꾸준히 참가하며 경험을 쌓았고, 가파른 성장세를 앞세워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안방을 책임질 차세대 포수 자원으로 가능성을 넓혀가는 중이다.

 

그는 “친 공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다”며 “팀원들과 소통하며 함께 경기를 치르고,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WPBL 원년 시즌 멤버로 합류한 보스턴 헌터스 김현아(왼쪽부터)와 뉴욕 하이츠 김라경,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박주아. 사진=WPBL 홈페이지 캡처
WPBL 원년 시즌 멤버로 합류한 보스턴 헌터스 김현아(왼쪽부터)와 뉴욕 하이츠 김라경,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박주아. 사진=WPBL 홈페이지 캡처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포수 정혜진. 사진=본인 제공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포수 정혜진. 사진=본인 제공

 

둘은 지난 5월 일본 마쓰야마서 교류전 차원에서 열린 국제 여자 유소년 야구대회에도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팀 소속으로 나란히 출전했다.

 

성인 국가대표는 16세 이상부터 가능하다. 연맹 관계자는 “나이 때문에 당장 성인 대표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꾸준히 지켜볼 만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며 “선주하와 정혜진도 그중 하나다.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층 불을 지필 계기도 생겼다. 김현아(보스턴 헌터스)와 김라경(뉴욕 하이츠), 박주아(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의 미국 여자프로야구(WPBL) 진출은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들에게 ‘언젠가 나도’라는 마음을 심어준 역사적인 장면이었을 터. 특히 선주하와 정혜진에겐 더욱 각별하다. 이들에게 가르침과 격려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선주하는 세 선배의 장점을 두루 본받고 싶어 한다. 김현아의 침착함과 박주아의 안정감을 눈여겨보는 가운데, 가장 닮고 싶은 선수로는 김라경을 꼽았다. 국제무대에서도 통하는 기량은 물론 한결같이 훈련에 임하는 태도 등 지향하는 선수상과 맞닿아 있어서다. 그에게 직접 받은 글러브와 편지도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김라경이 건넨 당부는 훈련에 임하는 자세에도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선주하는 “‘항상 열심히 하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며 “여자선수가 프로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자체도 큰 동기부여다. (김)라경 언니의 응원에 부응하는 선수로 성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투수 선주하.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한국 여자야구 꿈나무 투수 선주하.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정혜진 또한 특별한 인연을 쌓았다. 여자야구 클리닉을 통해 같은 포지션인 김현아에게 포수 훈련을 배웠고, 몇 달 전 천안서 열린 올스타 행사에선 코치를 맡은 박주아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라경과의 만남은 국가대표를 향한 의지를 더욱 굳혀줬다. 함께 훈련을 소화한 뒤 먼저 다가온 김라경은 정혜진의 플레이를 칭찬하며 “열심히 해서 나중에 대표팀에서 함께 뛰자”고 격려했다. 이어 자신도 그때까지 노력할 테니 야구와 학교생활 모두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정혜진은 “그 말을 들은 뒤 목표가 더욱 확고해졌다”며 “나도 훗날 어린 선수들에게 따뜻한 말과 용기를 건네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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