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치료할 수 없고 진단 받으면 손쓸 방법이 없는 질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최근 알츠하이머병의 병리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치매 치료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기존 치료제가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해 기억력과 판단력 저하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해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치료가 가능해졌다.
수원 S서울병원 신경과 임진희 원장은 “치매는 진단받는 순간 포기해야 하는 병이 아니다”며 “원인을 정확히 구분하고 치료 가능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면 인지기능과 일상생활 능력이 저하되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증상 조절 넘어 질병 진행에 개입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등 비정상 단백질이 쌓이면서 기억력과 언어능력, 판단력이 점차 저하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그동안 알츠하이머병 치료에는 도네페질·리바스티그민·갈란타민 등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와 메만틴이 주로 사용됐다. 이들 약물은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해 인지기능과 일상생활 능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를 직접 제거하지는 않는다.
레켐비주로 알려진 레카네맙은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단일클론항체 치료제다. 아밀로이드 응집체에 결합해 면역계가 이를 제거하도록 유도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4년 5월 레켐비를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성인 환자의 치료제로 허가했다. 국내 허가 대상은 증상이 초기 단계이고 아밀로이드 병리가 확인된 환자다.
임 원장은 “기존 약물이 뇌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보완하는 치료였다면 레카네맙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병리 기전 가운데 하나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직접 표적으로 삼는다”며 “치매 치료가 증상 관리에서 질환 진행을 늦추는 단계로 확장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27% 효과’는 기억력이 좋아졌다는 뜻 아냐
레카네맙의 효과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1795명이 참여한 임상 3상시험 ‘Clarity AD’를 통해 평가됐다.
환자들은 18개월 동안 2주마다 레카네맙 또는 위약을 정맥으로 투여받았다. 그 결과 기억력과 판단력,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종합한 CDR-SB 점수는 레카네맙군에서 평균 1.21점, 위약군에서 1.66점 악화됐다. 레카네맙 투여군의 임상 저하 속도가 상대적으로 약 27% 낮았다는 의미다.
이는 기억력이 27% 회복됐거나 환자의 27%가 치매에서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기간 위약군과 비교해 인지기능과 생활 기능의 악화 속도가 평균적으로 늦어졌다는 의미다.
레카네맙은 손상된 뇌세포를 되살리거나 사라진 기억을 회복시키는 완치제도 아니다. 치료를 받더라도 알츠하이머병은 진행할 수 있고 효과 역시 환자마다 다르다.
임 원장은 “치료 목표는 병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진행을 늦춰 환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시간을 늘리는 데 있다”며 “환자와 보호자가 기대 효과와 치료 부담을 충분히 이해한 뒤 투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 대상은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다.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됐거나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등 다른 유형의 치매 환자에서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아밀로이드 확인하고 뇌출혈 위험 점검해야
건망증이 있거나 인지검사 점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레카네맙을 투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과 수면장애, 갑상선 기능 이상, 비타민 결핍, 약물 부작용, 뇌혈관 질환도 기억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어 원인을 먼저 감별해야 한다. 신경학적 진찰과 신경심리검사, 혈액검사, 뇌 MRI 등을 통해 인지기능 저하의 정도와 다른 뇌질환 유무를 확인한다.
투여 전에는 아밀로이드 PET 검사나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 아밀로이드 병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치료는 2주에 한 번 정맥주사로 이뤄진다.
가장 주의해야 할 이상반응은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인 ARIA(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다. 뇌혈관 주변의 부종이나 삼출, 미세출혈 또는 표재성 철 침착이 나타날 수 있다.
연구에서는 ARIA가 레카네맙 투여군의 12.6%에서 나타났고, 주입 관련 반응은 26.4%에서 보고됐다. 대부분은 증상 없이 영상검사에서만 확인되었으나, 일부 환자에게는 두통과 혼란, 어지럼증, 시야 변화, 보행장애, 경련 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치료 전 뇌 MRI로 기존 미세출혈과 뇌혈관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 과정에서도 정기적인 MRI 검사가 필요하다. 특정 MRI 장비만으로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며 적절한 촬영과 판독, 이상 발견 시 투여를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 체계가 중요하다.
APOE ε4 유전자를 가진 환자는 ARIA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항응고제 복용 여부와 기존 뇌 미세출혈, 뇌혈관 질환 병력도 치료 전에 확인해야 한다.
임 원장은 “레카네맙은 누구에게나 처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치매약이 아니다”며 “초기 알츠하이머병 여부와 아밀로이드 축적, 뇌출혈 위험과 복용 약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일을 반복해서 묻거나 익숙한 길과 업무 처리에서 실수가 늘어난다면 나이 탓으로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며 “뇌세포 손상이 심해지기 전에 원인을 확인하는 조기 진단이 치료 선택지를 넓히는 시작”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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