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IP 시장이 커질수록 침해 수법도 조직적이고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 웹툰 등이 해외 불법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짝퉁 상품, 예능 포맷 표절, 음원 저작권 선점 등 IP 도용도 확산되는 추세다. 문제는 피해가 반복되는데도 실질적인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흥행 뒤 따라붙는 IP 도용
3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국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을 사실상 그대로 차용한 사례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미운 우리 새끼, 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삼시세끼, 윤식당, 냉장고를 부탁해, 히든싱어, 흑백요리사 등 한국의 인기 프로그램들이 제목과 일부 구성만 바꾼 채 현지에서 제작·방영됐다. 대표적으로 무한도전을 사실상 그대로 옮긴 중국 동방위성TV의 극한도전은 시즌6까지 제작될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원작 포맷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지급되지 않았다.
드라마 역시 예외는 아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중국에서 정식 서비스되지 않았음에도 주인공들의 사진이 허베이성의 한 식품 판매점 광고에 무단 사용돼 논란이 됐다. 정식 유통 여부와 관계없이 콘텐츠와 배우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K-콘텐츠의 해외 권리 보호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법 유통이다. 콘텐츠가 공개되면 불법 사이트에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제2의 누누티비로 불리는 해외 기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와 저작권 침해 웹툰 플랫폼들은 동남아시아와 남미, 유럽 등 여러 국가에 서버를 분산 배치하며 단속을 피해 운영되고 있다. K-드라마와 영화가 글로벌 OTT에서 흥행할수록 불법 사이트의 접속량도 함께 증가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불법 유통으로 인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연간 피해 규모가 수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로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표한 해외 한류 콘텐츠 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서 발생한 K-콘텐츠 불법 유통은 약 4억9400만건으로 전년보다 19.3% 증가했다.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가 높아질수록 불법 복제와 무단 배포 역시 함께 늘고 있는 셈이다.
음악 시장에서도 피해가 잇따른다. 2021년에는 중국 음반사들이 국내 인기 가수들의 음원을 무단 편곡한 뒤 자신들의 저작물인 것처럼 등록해 수익을 가져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이유와 god, 브라운아이즈, 토이, 다비치, 이승철, 윤하 등의 노래를 중국어 제목과 앨범명으로 바꿔 유튜브에 게시하고, 메타 플랫폼에도 먼저 등록하면서 저작권 수익을 선점한 것이다. 오히려 원곡이 차단되고 수익이 중국 측으로 귀속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베껴도 못 잡는다…법이 만든 사각지대
피해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제도적 공백이 있다. 예능 포맷이 대표적이다. 저작권법은 구체적으로 표현된 창작물을 보호할 뿐 아이디어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다. 출연자 구성이나 게임 규칙, 진행 방식 같은 포맷의 뼈대는 아이디어 영역으로 분류되기 쉬워, 제목과 세부 설정만 바꾸면 표절 입증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국제포맷보호협회(FRAPA) 등 민간 기구가 중재에 나서지만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불법 유통은 또 다른 차원이다. 서버가 해외에 있고 운영자 신원도 특정되지 않아 국내 수사기관의 관할이 미치지 않는다. 사이트 하나를 차단해도 도메인만 바꿔 며칠 만에 되살아나는 두더지 잡기가 반복된다. 침해국의 사법 절차를 밟자니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중소 제작사와 개인 창작자는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 산정 기준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손해를 객관적으로 계산할 방법이 없다 보니 배상액이 실제 피해에 못 미친다. 침해로 얻는 이익이 적발 시 부담보다 크다면 위법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사후 대응서 사전 방어로
업계는 대응 방식을 바꾸고 있다. 삭제를 요청하는 사후 방식으로는 확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제작사들은 예능 포맷을 이른바 포맷 바이블 형태로 정리해 해외에 정식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표절을 원천 차단하긴 어려워도 계약 이력을 남겨 협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콘텐츠에 식별 정보를 심는 워터마킹과 불법 복제물을 자동 탐지하는 핑거프린팅 기술 도입도 늘고 있으며, 주요 진출국에 상표권과 디자인권을 미리 출원해 굿즈 도용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정부는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권리 침해가 명백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예상되는 사이트를 즉시 차단하는 긴급차단제도를 도입했고, 경찰청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등과 협력 체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국제 공조는 상대국의 협조 의지에 좌우되는 만큼 실효성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IP 침해 사례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피해 기업에 대한 법률·행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해외 상표권과 디자인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콘텐츠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핵심 산업이자 문화자산”이라며 “창작자들의 노력과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될 수 있는 실질적인 보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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