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야구의 ‘대들보’ 김라경(뉴욕 하이츠)이 미국 여자프로야구(WPBL) 데뷔전서 당찬 투구를 아로새겼다. 막판 불펜과 수비 난조로 승리는 놓쳤지만, 궂은 날씨 속에서도 4이닝을 책임지며 팀의 에이스로 낙점된 이유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김라경은 2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로빈 로버츠 스타디움서 열린 로스앤젤레스(LA) 퀸즈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2피안타 4볼넷 4탈삼진 4실점(2자책점)을 써냈다. 뉴욕은 그가 8-4로 앞선 채 내려간 뒤 6회 2점, 7회 4점을 내줘 8-10으로 역전패했다.
비로 경기 시작이 늦어진 가운데 출발은 험난했다. 1회 선두타자를 유격수 실책으로 내보낸 뒤 볼넷과 폭투, 적시타가 겹쳐 두 점을 허용했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세라 에드워즈(LA)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워 WPBL 1호 탈삼진의 주인공이 됐고, 후속 타자도 루킹 삼진으로 잡았다.
타선은 곧바로 5점을 뽑아 경기를 뒤집었다. 힘을 얻은 김라경은 2·3회 여섯 타자를 연달아 범타로 묶었다. 특히 3회엔 전매특허인 낙차 큰 ‘폭포수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4회 연속 볼넷 뒤 2타점 2루타를 맞았지만, 다시 커브를 앞세워 추가 실점을 막았다.
7이닝제인 WPBL은 정식 경기 성립과 선발승 요건이 모두 4이닝 기준이다. 김라경은 아웃카운트 12개를 채우고 네 점 차 리드를 넘겼다. 하지만 뉴욕은 7회 비바람 속 뜬공 처리에 어려움을 겪은 뒤 집중타를 허용해 승부를 내줬다.
상대 선발은 여자야구 월드컵 최우수선수(MVP)만 세 차례 거머쥔 일본의 ‘리빙 레전드’ 사토 아야미(LA)였다. 경기 전 SNS서 서로를 향한 존중과 우정을 드러냈지만, 실제 승부에선 김라경이 4이닝을 버티며 3이닝 10피안타 7실점에 그친 사토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다.
동경하던 선배와 프로 무대에서 마주 서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국내 여자야구의 척박한 현실을 견디며 중학생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았고, 서울대에서는 학업과 남자 대학리그를 병행했다. 2022년 일본 아사히 트러스트 입단 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과 긴 재활을 견뎠고, 지난해 세이부 라이온스 레이디스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끝에 꿈꾸던 프로 마운드에 닿았다.
세계 정상급 선수와 견줘도 밀리지 않을 경쟁력을 첫 등판부터 보여줬다. 숱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김라경의 힘찬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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