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멀리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회식에서도 무알코올 음료를 고르고 평소 음주를 줄이는 사람이 늘면서 자신의 간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간에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술이나 바이러스에만 있지 않다. 야근이 끝난 뒤 고열량 배달음식으로 늦은 식사를 하고,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부족한 수면을 반복하는 생활도 체중 증가와 대사 이상을 거쳐 간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매년 7월 28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간염의 날’이다. 간염 예방과 검사·치료의 중요성을 알리는 날이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간염을 A·B·C형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이나 과음으로 생기는 문제로만 받아들인다.
정다은 경산중앙병원 내과 주임과장은 “간염은 말 그대로 간 조직에 염증이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며 “바이러스 감염이나 음주 외에도 비만,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대사 이상으로 간에 지방이 축적되고 염증과 간세포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술 안 마셔도 간에 지방과 염증 쌓인다
과거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으로 불리던 질환은 최근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질환(MASLD)’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간에 지방이 축적돼 있으면서 복부비만, 고혈당, 고혈압, 높은 중성지방, 낮은 고밀도지단백(HDL) 콜레스테롤 등 심혈관·대사 위험요인을 동반한 상태를 말한다.
간에 지방만 쌓인 초기 단계에서 더 진행하면 염증과 간세포 손상이 발생하는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으로 이어질 수 있다. MASH가 지속되면 간 조직이 딱딱해지는 섬유화가 진행하고 일부에서는 간경변이나 간암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
국제 간질환 학계는 2023년 기존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을 MASLD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을 MASH로 변경했다. 음주 여부만으로 질환을 구분하기보다 비만과 혈당, 혈압, 지질 수치 등 대사 이상을 중심으로 질환의 원인과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정 주임과장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도 복부비만이 있거나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을 앓고 있다면 지방간질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특히 체중은 정상 범위여도 허리둘레가 크고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야근 후 배달 야식·짧은 수면 반복한다면
배달 앱을 이용하거나 늦게 잠드는 행동 자체가 지방간염을 직접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고열량·고지방·고당류 음식을 늦은 시간에 반복해서 먹고 활동량과 수면시간은 부족한 생활이 이어지는 경우다.
야근 뒤 허기를 참지 못해 치킨, 피자, 햄버거, 떡볶이 등 열량과 포화지방, 정제 탄수화물, 나트륨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으면 하루 전체 섭취 열량이 필요량을 넘기기 쉽다. 남은 에너지는 중성지방 형태로 저장되고, 내장지방과 간 지방이 증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불규칙한 수면도 간접적인 위험요인이다. 수면시간이 부족하거나 취침·기상 시간이 계속 바뀌면 식욕과 혈당을 조절하는 생체리듬이 흐트러질 수 있다. 야식을 더 자주 찾거나 인슐린 저항성이 악화되는 등 체중과 대사 건강에 불리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정 주임과장은 “배달음식 한두 번이나 늦은 취침만으로 지방간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야식, 수면부족, 운동 부족이 수개월 이상 겹치면 체중과 허리둘레, 혈당, 중성지방 수치가 함께 오를 수 있다”며 “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 건강을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체중이 빠르게 늘었거나 배가 유독 나오고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중성지방·간수치가 높게 나왔다면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지방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간수치 정상이라고 지방간 없는 것은 아냐
지방간질환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피로감이나 오른쪽 윗배의 불편감이 나타날 수 있지만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한 채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사례도 많다.
혈액검사에서 아스파르테이트아미노전달효소(AST)와 알라닌아미노전달효소(ALT) 등 간수치가 높게 나타날 수 있지만, 간에 지방이 쌓여 있거나 섬유화가 진행 중이어도 수치가 정상 범위인 경우가 있어 간수치만으로 지방간질환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비만이나 당뇨병 등 위험요인이 있다면 혈액검사와 복부 초음파를 통해 간 지방 축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연령과 AST·ALT, 혈소판 수치를 이용한 FIB-4 지수나 간 탄성도 검사 등을 통해 간 섬유화 위험을 추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예방과 관리에서는 체중과 허리둘레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체중 감량이 필요한 경우 식사량을 갑자기 극단적으로 줄이기보다 음료와 간식에 든 당류, 야식과 과식을 먼저 줄이고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규칙적으로 병행하는 것이 권고된다. 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가능한 한 늦은 밤의 고열량 식사를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 주임과장은 “지방간은 흔하다는 이유로 가볍게 여기기 쉽지만 염증과 섬유화가 동반됐는지에 따라 향후 위험이 달라진다”며 “간수치 이상을 방치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기보다 체중과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을 함께 관리하고 필요한 경우 의료진에게 정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