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극한의 심리전, 출연자 간 감정 충돌은 이제 서바이벌 예능의 흥행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자극이 출연자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순간에도 이를 ‘게임의 일부’라는 말로 넘길 수 있을까.
최근 웨이브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X는 약탈의 날 미션을 통해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제한 시간 동안 무력이 허용되는 규칙 아래 출연자들은 자금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실제 부상이 발생했다. 방송 이후 공개된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안겼고, 출연자들 역시 잇따라 심경을 털어놓으며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신승용은 방송 직후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그는 방송을 본 뒤 자신의 행동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비쳤음을 인정하며 함께 출연한 이들에게 직접 연락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특히 서출구의 손을 다치게 한 점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치료를 약속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출연자의 과몰입이 빚은 일회성 사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출연자들이 전한 이야기는 이번 논란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서출구는 방송 이후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력이 허용된 룰이라도 출연자의 안전은 우선돼야 한다며, 당시 부상 역시 “악의적인 폭행이 아닌 사고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손목에 건 가방끈이 예상보다 강한 힘과 엇갈린 방향으로 당겨지면서 깊은 상처를 입었고, 출혈과 손 떨림으로 팀닥터의 미션 중단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높은 층고와 낮은 난간, 협소한 계단 등 위험한 촬영 환경 속에서 출연자들이 사고를 막기 위해 미션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지만, 방송에서는 이러한 배경이 대부분 편집되고 과격한 장면만 부각된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허성범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장시간 여러 사람에게 제압당한 채 움직이지 못했고 손과 목,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특히 “무력 허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전 시즌에도 습격과 약탈은 있었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켜졌고, 현장의 미흡한 대응이 출연자들의 감정을 더욱 격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문제는 정말 출연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일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는 제작진이 만든 규칙 안에서 경쟁한다. 무력이 허용된다는 규칙이 제시되는 순간, 출연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 기준에 맞춰 행동하게 된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선을 넘은 행동에 대한 책임 역시 당사자가 져야 한다.
하지만 제작진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위험이 충분히 예상되는 규칙을 설계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안전장치와 즉각적인 통제 시스템도 마련됐어야 한다. 출연자의 감정이 극도로 격해졌을 때 이를 중재하고,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순간 게임을 멈추는 것 또한 제작진의 몫이다.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실제 위험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연출이 아니라 관리 부실에 가깝다.
최근 예능은 현실성과 몰입감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현실을 닮았다고 해서 실제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출연자가 다치는 장면이 아니라 치열한 심리전과 전략이다. 리얼리티의 완성도는 실제 충돌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규칙과 긴장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더욱 아쉬운 점은 논란 이후의 풍경이다. 출연자들이 사과와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입장을 직접 밝혔다. 제작 환경을 설명하며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제작진의 안전 관리와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출연자들만 비난의 최전선에 서는 모양새가 됐다.
리얼리티 예능은 갈수록 자극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자극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안전보다 재미를 앞세운 룰은 언젠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시청률과 화제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출연자의 안전을 지키는 제작 원칙부터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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