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에 가까웠던 꿈이 현실이 됐다. 한국 여자야구가 마침내 프로라는 이름의 다이아몬드에 첫발을 내디딘다.
여자야구가 프로 무대에 닿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야구를 계속할 팀과 리그, 훈련 환경조차 부족한 현실과 싸워야 했다. 중·고교 입학 때부턴 운동을 이어갈 길이 막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국가대표 선수들조차 학업과 직장, 생계를 병행하며 꿈을 지켜왔다.
선수와 지도자, 연맹, 학부모들의 노력 속에 여자야구는 조금씩 저변을 넓혔고, 이제는 세계 무대서 경쟁하는 대표팀과 미국 프로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을 배출하는 단계까지 성장했다. 그 결실이 바로 다음 달 출범하는 미국 여자프로야구(WPBL)에 합류한 김라경(뉴욕 하이츠), 김현아(보스턴 헌터스), 박주아(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다.
72년 만에 부활한 WPBL은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첫 시즌을 치른다. 뉴욕과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LA) 퀸즈 등 4개 팀이 참가해 팀당 15경기를 소화한다. 김라경의 뉴욕과 LA가 8월2일 오전 7시 개막전을 치른다. 김현아의 보스턴과 박주아의 샌프란시스코는 이튿날 맞붙는다. 정규리그는 9월7일까지, 포스트시즌은 9일부터다.
이 문을 가장 오랜 시간 두드려온 선수는 김라경일 터.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 선수들과 리틀야구를 시작해 중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서울대 야구부 소속으론 국내 대학리그 최초의 여자 선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여자 선수의 리틀야구 출전 연령을 늘린 ‘김라경 특별규정’도 그의 헌신 끝에 만들어졌다.
늘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2022년 일본 실업팀 아사히 트러스트에 입단했지만 부상에 눈물을 삼켰고, 여자야구 선수로는 처음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2년 넘는 재활 끝에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즈 산하 여자팀서 다시 공을 잡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글러브와 방망이를 매만진다. 수술 직후부터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겪었다. 김라경은 “이렇게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 줄 몰랐다”고 운을 뗀 뒤 “내게는 돌아올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막연한 공포와 싸워야 했다. 그래도 야구만큼은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돌고 돌아 미국으로 향한다. 지난해 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로 지명됐고, 투타겸업 선수로 뛴다. 어깨 회복을 위해 이달 월드컵 대표팀에선 제외됐지만 하남리틀야구단 지도와 재활, 개인 훈련을 병행하며 출국까지 구슬땀을 흘렸다.
김라경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직접 상대하면 어떨지 기대가 크다”며 “좋은 활약을 남겨 후배들과 다음 세대에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외로운 싸움이 아니다. 홀로 두드리던 문,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한다. 포수 김현아는 4순위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호명됐다. 전체 포수 자원 중에서도 첫 지명으로, 미국 국가대표 안방마님 데네이 베니테스(뉴욕·6순위)보다 앞서 선택받았다.
WPBL은 김현아의 국제대회 경험과 안정적인 수비, 투수진을 이끄는 리더십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도 ‘엄지 척’이다. 그를 향해 “수비가 탄탄하고 투수들을 이끄는 능력도 뛰어나다”면서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면서도 장타를 노릴 수 있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3루수 출신인 김현아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포수로 전향한 뒤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번 WPBL 합류로 세계 정상급 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를 잡았다. 그는 “아직 유니폼을 받지 않아 크게 실감 나진 않는다”며 “미국에서 직접 입고 사진도 찍어봐야 와닿을 것 같다”고 벅찬 설렘을 드러냈다.
2라운드 33순위에 지명된 ‘국대 유격수’ 박주아도 빼놓을 수 없다. 리틀야구서 대표팀을 거쳐 프로까지 올라온 한국 여자야구의 다음 얼굴이다. 박주아는 “WPBL이 관심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여자야구 선수가 보수를 받으며 뛸 무대가 생겼기 때문”이라며 “드디어 야구선수로서 일하고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프로리그 출범의 의미를 짚었다.
그라운드 밖 존재감도 대단하다. 국내 정상급 스포츠 에이전시인 리코의 손을 잡은 게 대표적이다.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까지 넓혔다. 한 여자야구 관계자는 박주아를 향해 “요즘 대한민국 스포츠 소녀들이 가장 동경하는 선수 중 한 명”이라고 귀띔했다.
김라경이 없던 길을 개척해왔다면, 김현아는 한국 여자야구 경쟁력을 드높였다. 나아가 박주아는 여자야구의 외연을 대중과 시장으로 넓혔다. 세 선수가 한국 여자야구를 대표해 WPBL 무대에서 써 내려갈 첫 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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