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 위에서 천하를 호령했다. 상대의 중심이 흔들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았고,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씨름판에서 수차례 샅바를 번쩍 들어 올렸다.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7회. ‘모래판의 신사’로 불리며 씨름 전성기를 이끌었다.
영광의 시대를 직접 경험했고, 한파처럼 불어닥친 씨름의 침체기 또한 온몸으로 견뎌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부활보다 지속 가능한 내일을 이야기한다. 모래판의 전설에서 한국 씨름의 설계자로 변신한 주인공, 이준희 대한씨름협회장을 만났다.
“선수는 자신만 잘하면 되고, 지도자는 선수를 잘 이끌어 성적을 내면 됩니다. 행정은 이 모든 분야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하더군요. 깊이 파면 팔수록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취임 1년6개월을 맞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장은 여전히 전국의 모래판을 누비고 있다. 샅바 대신 넥타이를 맸다. 한 해 20차례 안팎 열리는 전국 대회장을 찾아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와 지역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달콤한 과실을 좇기보다, 현장의 작은 불편부터 하나씩 걷어내는 게 그의 방식이다.
1980년대 이만기, 이봉걸과 함께 ‘씨름판 트리오’로 불렸던 그는 당대의 슈퍼스타였다. 이후 LG투자증권과 신창건설 감독을 거쳤고, 2013년부터 대한씨름협회 경기부장과 경기운영총괄본부장 등을 맡아 행정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1월엔 프로씨름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협회 수장에 올랐다.
◆줄어드는 아이들 “기반 유지가 먼저”
스타 선수에서 지도자와 행정가를 거쳐 회장이 된 그가 가장 절실하게 바라보는 곳은 화려한 민속씨름 무대가 아닌 유소년 현장이다. 학령인구 감소가 학교 운동부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어서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6∼17세 인구는 2000년 810만8000명에서 2020년 547만8000명으로 32.4% 감소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5년 511만3000명에서 2035년에는 309만1000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교육부 집계서도 전국 학교 운동부는 2014년 5280개에서 2021년 3860개로, 7년 사이 1420개나 줄었다.
씨름이라고 비켜갈 수 없다. 군 단위 학교의 학생 수가 줄면서 씨름부가 사라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씨름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전남 장흥의 학교 씨름부가 선수 부족으로 여수에 새 둥지를 트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무리하게 선수 수를 늘리겠다고 외치기보다 현재의 기반을 최대한 지켜내는 데 먼저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구가 줄어드는데 선수만 크게 늘리겠다고 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있는 선수라도 덜 줄게 해야 한다. 초등학교가 무너지면 5∼10년 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과 실업팀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피라미드가 거꾸로 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접근법도 과거와 달라졌다. 처음부터 엘리트 선수를 만들기보다 아이들이 씨름을 재미있는 운동으로 받아들이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태권도나 검도 학원에 다니듯 클럽에서 부담 없이 씨름을 경험하고, 그 가운데 재능과 의지가 있는 아이가 선수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초등학생에게는 성적보다 흥미가 우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번의 패배로 상처받아 모래판을 떠나지 않도록 대회 운영 전반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먼 지역 원정을 꺼리는 학교 사정과 선수들의 체중 감량 부담을 고려해 학생대회 횟수를 현재 9차례에서 7차례 안팎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출전 기회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도록 경기 방식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이 회장은 “참가 선수는 적은데 대회만 늘어나면 경기의 질도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라며 “아이들이 몇 달 동안 준비하고도 단판에서 져 30분 만에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경기 운영 방식 역시 계속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자 씨름은 또 다른 가능성일 터. 최근 생활체육대회에 10대 여학생의 참가가 늘었고, 취미로 시작했다가 대학이나 실업팀에 진출하는 사례도 생겼다는 설명이다. 정식 중·고교팀을 당장 늘리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학교와 지역 클럽을 연결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협회는 여자 대학팀의 선수 수가 당장은 적더라도 연간 훈련비를 지원하며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민속씨름 살려 꿈나무까지 잇는다
씨름의 부활을 위해서는 아래를 단단히 다지는 일만큼, 위에서 끌어당기는 힘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닮고 싶은 스타와 꿈꿀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저변도 살아난다. 1983년 프로씨름 출범을 지켜본 어린이들이 이만기와 이준희를 동경하며 샅바를 잡았듯, 오늘날에도 민속씨름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회 안에 민속씨름을 전담할 별도 위원회 또는 본부를 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회 운영과 흥행, 시드제 도입 등을 전문적으로 검토해 강자들의 승부와 다양한 기술이 팬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임기 안에 전담 체계를 출범시키는 것이 목표다.
기술 씨름을 되살리는 일도 과제다. 현대 씨름은 선수들의 체력과 경기 분석 수준이 높아지면서 최소한의 힘으로 상대 중심을 무너뜨리는 효율적인 승부가 많아졌다. 선수에게는 영리한 선택이지만 관중 눈에는 움직임이 적고 단조롭게 비칠 수 있다.
이 회장은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 않을까. 연구를 많이 할수록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는 면도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선수는 하루에 여러 경기를 치러야 하니 힘을 아끼면서 빨리 이기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기술 사용을 강요할 수도 없다”며 “협회도 끊임없이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 샅바를 조금 느슨하게 잡도록 유도하거나 선수들이 더 움직일 수 있도록 규정을 보완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전설이 심고 있는 ‘내일’이라는 씨앗
씨름계에 밀려온 높고 낮은 파도를 온몸으로 지나왔다. 선수 시절 장충체육관은 발 디딜 틈 없이 관중들로 들어찼고, 저녁 생중계가 길어지면 지상파 방송사의 오후 9시 뉴스도 씨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반대로 감독 시절엔 프로팀들이 잇따라 해체되는 쇠락의 한복판 역시 지켜봐야 했다.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되찾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스포츠와 여가가 다양해진 시대에 1980년대의 시청률과 인기를 재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민속씨름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지자체와 실업팀이 선수 홍보와 팬 서비스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이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선은 해외로도 향한다. 협회는 나아가 국제 씨름기구 설립을 위해 뛰고 있다. 터키와 몽골,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고유의 전통 레슬링을 보유한 국가들과 교류를 넓히고, 장기적으로 아시안게임 시범종목 진입까지 노린다.
이 회장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국내 인사들끼리 간판부터 내거는 졸속 조직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먼저 다지겠다는 것. 자신이 결실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수확할 수 있는 나무를 심겠다는 뜻이다. 그는 “연맹 하나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며 “중요한 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내실이다. 임기 안에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주춧돌을 놓고 싶다”고 말했다.
살을 빼기 위해 초등학교 때 처음 샅바를 잡았던 소년은 선수와 감독, 행정가를 거쳐 평생 씨름 곁을 지켰다. 임기를 마친 뒤 어떤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거창한 수식어 대신 소박한 바람을 꺼냈다.
“씨름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씨름 발전에 보탬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욕먹지 않는 회장으로서 남고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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