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공만이 팬들의 탄성을 끌어낸 건 아니다. 시속 155㎞ 강속구가 포수 미트에 꽂히는가 하면, 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커브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서 열리고 있는 2026 KBO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 선발투수 곽빈(두산)이 포문을 제대로 열었다. 1회 초 네 타자를 상대로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수 20개 가운데 직구 13개를 던져 평균 시속 150㎞, 최고 154㎞를 찍었다.
1999년생 동갑내기 안우진(키움)도 힘으로 맞섰다. 나눔 올스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타자 6명을 상대로 1이닝 동안 24구를 던졌다. 박찬호에게 2루타를 허용한 뒤 볼넷과 안타가 이어지며 1실점했지만, 직구 17개의 평균 구속은 곽빈과 같은 150㎞, 최고 구속 역시 154㎞에 달했다.
팀 동료 박준현도 빠지지 않았다. 고졸 신인으로 데뷔 첫해 올스타 무대를 밟은 그는 나눔 올스타가 2-1로 앞선 4회 말 마운드에 올랐다. 안타 2개와 볼넷 1개를 내줬으나 삼진 1개를 곁들이며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직구 17개는 평균 152㎞, 최고 155㎞를 기록했다. 내로라하는 선배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유력 신인왕 후보의 패기가 돋보였다.
웃고 즐기는 축제에서도 마운드 위 승부만큼은 진지할 터. 이강철 KT 감독은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올스타전이 어느 순간부터 진지해졌다. 장난처럼 하다가도 공은 제대로 던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전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코디 폰세(전 한화)가 최고 156㎞의 직구를 뿌렸고, 배찬승(삼성), 김영우(LG), 김서현(한화)도 앞다퉈 빠른 공으로 열기를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이날 마운드에 속도 경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장면은 베테랑 투수 류현진(한화)이 만들었다. 2회 말 공 9개로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았다. 첫 타자 최형우를 실책으로 내보냈지만 르윈 디아즈(이상 삼성), 양의지, 박준순(이상 두산)을 연달아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9개 모두 직구였지만 평균 구속은 118㎞, 최고도 121㎞에 그쳤다. 류현진의 올 시즌 전반기 직구 평균 구속이 143.7㎞(스탯티즈 기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규리그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투구였다. 힘을 뺀 공과 절묘한 제구만으로 타자들의 방망이를 끌어낸 베테랑의 연륜이 묻어났다.
양창섭(삼성)은 한술 더 떴다. 2회 초 무사 1루에서 김주원(NC)을 상대로 96㎞ 커브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큰 포물선을 그리는 ‘이퓨스’를 떠올리게 하는 공이었다. 완급을 앞세운 ‘느림의 미학’이 빛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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