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토크] ‘신사’ 김재중 “잠깐 작업 해볼까? 그런 마음 절대 안돼”…①

-화려함 잊어라…‘모든 색을 지워낸’ 배우 김재중
-김재중, 고정관념 깨부순 박수무당 역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와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던 아티스트가 모든 색을 지워냈다. 2012년 영화 '자칼이 온다' 이후 무려 1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김재중의 이야기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선택한 복귀작은 뜻밖에도 한일 합작 오컬트 호러 영화 '신사: 악귀의 속삭임'(이하 '신사')이다.

 

이번 영화에서 김재중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철저히 감추고 누르는 편을 택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절제된 표정, 그리고 깊은 눈빛만으로 과거의 상처를 품은 박수무당 '명진'을 완성해 낸 그를 만나 스크린 밖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들을 들여다보았다.

 

◆ '잠깐 시간 나서 해볼까' 하는 마음은 안 되니까

 

"배우라는 직업도 너무 오랜만이었고, 심지어 스크린 복귀작이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낯섦과 두려움,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공존해 있었죠.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뤄졌을 뿐입니다. 연기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지만, 수많은 스태프가 큰돈과 시간을 들여 만드는 작품에 '잠깐 시간 났으니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참여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중한 고민 끝에 마주한 영화 '신사'는 그의 예술적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한국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샤머니즘에 일본 J-호러 특유의 음산하고 정적인 감성이 결합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국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의 연출을 거쳐 어떤 영상미로 구현될지 몹시 궁금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가 대여섯 번 수정되는 과정에서 김재중이 연기할 '명진'의 성격이 180도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의 명진은 선택권이 아주 많은, 잘 차려진 밥상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하고 즐거우면 웃을 수 있는 평범한 그 나이대 청년이었죠. 그런데 각본이 수정되면서 점차 아주 무겁고 어두운 짐을 지닌, 고독한 인물로 변화했습니다. 관객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유발해야 하는 캐릭터가 되다 보니 말수도 줄고 대사도 극도로 절제됐습니다. 초기에는 솔직히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묵묵히 내면으로 눌러 담으며 극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은 그에게도 큰 과제였다. 인물의 전사와 모든 비밀을 완벽히 알고 있는 배우의 입장과, 아무런 정보 없이 극장에 앉아 낯선 공포를 따라가야 하는 관객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명진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공기가 바뀐다고 감독님이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영화 안에 더 많은 것을 숨겨두고 장치처럼 활용하고 싶어 하셨죠. 촬영 초반에는 명진의 과거사나 할머니 무당 스토리 같은 비하인드를 제게도 설명을 안 해주셨습니다. 배우가 미리 정보를 다 알고 연기하면, 은연중에 드러나지 않아야 할 감정까지 표정이나 발성으로 드러날까 봐 우려하셨던 거죠. 저는 명진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너무 누르기만 하니까 답답한 순간도 있었지만, 작품이 완성되고 나니 감독님이 왜 그렇게 감정을 아끼고 누르려 하셨는지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 고정관념을 깬 판타지…"이 영화는 일종의 히어로물"

 

김재중이 연기한 명진은 우리가 흔히 미디어를 통해 보아왔던 무당의 이미지와 확연히 다르다. 화려한 문양과 색감의 옷을 입고 작두를 타거나 요란하게 북을 치며 접신 상태를 과시하는 익숙한 무속인의 모습은 영화에 없다.

 

"고정관념을 버리는 게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한국 관객에게는 무당에 대한 고착된 이미지가 있지만, 일본인 감독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무당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판타지적인 인물로 바라보셨죠. 다른 국가의 악귀를 한국의 무당이 신력으로 맞선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판타지이기에, 굳이 전통적인 고증에만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보신 겁니다."

 

그는 명진을 특정 종교의 틀에 갇힌 인물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나 영화 '콘스탄틴' 속 인물처럼 이해하기로 했다.

 

"우리 영화는 어떻게 보면 히어로물입니다. 명진은 슈퍼맨처럼 이것저것 다 해결하는 인물이죠. 감독님은 명진이 흔드는 방울을 마치 '콘스탄틴'의 십자가처럼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방울에 주문과 기합을 불어넣어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판타지적 설득력을 부여하고자 하셨죠.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무당의 전형적인 몸짓과 뉘앙스를 내려놓고, 새로운 형태의 샤머니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참 신선하면서도 도전적이었습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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